[특파원 코너-정원교] 캠페인으로 유지되는 사회라면

입력 2012-03-06 18:06


“레이펑을 배우자∼ (우리의) 좋은 모범∼.”

요즘 중국 TV나 라디오에서 수시로 듣게 되는 노래 첫 부분이다. 가사에서 알 수 있듯 ‘레이펑(雷鋒) 따라잡기’에 떨쳐나서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쾌한 곡조에다 동요풍이어서 특히 아이들이 따라 부르기 좋게 돼 있다.

올해는 레이펑이 사망한 지 50주년 되는 해. 중국 당국은 지금 전국 인민들에게 ‘레이펑 학습’ 열기를 고취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정규 TV 뉴스 도중 레이펑이란 인물이 왜 따라 배워야 할 만큼 위대한지 소개하는 공익광고물을 내보내는 건 약과다. ‘이 시대의 레이펑’을 뽑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가 하면 기념품 가게에는 ‘레이펑 수수(叔叔·아저씨)를 따라 배우자’라고 쓴 머그잔도 나왔다. 베이징시는 매주 토요일을 ‘레이펑 활동의 날’로 정했다. 중국중앙(CC)TV 뉴스채널은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저녁 8시 황금시간대에 레이펑 특집을 시리즈로 내보냈다.

레이펑이 과연 어떤 사람이기에 이처럼 온 나라가 떠들썩한 것일까. 그는 1940년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시 왕청(望城)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7세 때 고아가 됐다. 아버지, 형, 동생이 차례로 죽은 뒤 어머니마저 지주에게 능욕을 당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훗날 주변 친구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왕청현위원회에서 공무원을 지낸 뒤 랴오닝성 안산으로 가 강철공장 노동자로 일했다. 안산강철공장에서는 모두 26차례 표창을 받았고 ‘청년사회주의건설적극분자’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받았다. 그 뒤 59년 인민해방군에 들어간다. 그는 운전병으로 있으면서 자신의 월급을 모아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와주는 등 선행을 수없이 한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62년 8월 군용 트럭을 후진시키기 위해 차 뒤에서 신호를 보내다 사고를 당해 숨지게 된다. 그가 숨진 뒤 발견된 일기에는 “우리 생명은 유한하지만 인민을 위한 봉사는 무한하다”는 등 글귀가 표현돼 있었다.

그의 본명은 레이정싱(雷正興)이지만 혁명의 선봉(先鋒)에 서겠다는 뜻에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마침내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이 ‘레이펑 동지를 배우자’라고 쓴 휘호가 63년 3월 5일 전국 각 신문에 실리면서 레이펑 학습 열풍이 불게 된다. 레이펑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TV에 나와 눈시울을 붉히며 증언하는 걸 보면 그가 칭송받을 만한 품성을 갖춘 인물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우려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적지 않은 인민들은 지금도 “레이펑 정신이 우리 사회에 더 퍼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부패한 관리들은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서 라오바이싱(老百姓·일반 국민)에게는 레이펑을 배우라고 한다”는 비판도 나오는 게 현실이다.

레이펑 학습 운동은 2000년대 들어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한동안 뜸했다. 올해 사망 50주년과 권력 교체기가 맞아떨어져 또다시 ‘레이펑 띄우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시는 지난해 말부터 ‘애국 창신(創新) 포용 후덕’ 네 가지를 ‘베이징 정신’으로 내세우면서 이를 함양하자는 캠페인을 크게 벌이고 있다. 중국 언론에서는 기층민중 속으로 들어가자는 ‘저우지청(走基層) 운동’이 계속되고 있다.

문혁(文革)은 끝났지만 아직도 그때처럼 각종 구호는 범람한다. 시대 상황이 바뀌고 인민들의 의식은 높아져도 당국의 대응은 제자리걸음인 것 같다. 캠페인과 구호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는 사회라면 과연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