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할머니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까닭은?… “한글 완전히 깨우쳐 신문 읽고 싶어서”
입력 2012-03-05 19:40
“글을 배운다는 게 그저 설레기만 해요. 빨리 한글을 깨우쳐 신문도 읽고 TV에 나오는 자막도 읽고 싶어요.”
경북 문경시 산북면 호암리 박삼순(74) 할머니는 지난 2일 같은 마을 여순아(77) 할머니와 함께 산북초등학교 창구분교에서 열린 입학식에 나란히 참석했다.
고희(古稀)를 훌쩍 넘긴 두 사람이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용기를 낸 것은 남들처럼 한글을 깨우쳐 신문을 줄줄 읽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박 할머니는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고 힘들게 살아온 탓에 배우지 못한 게 평생 한(恨)이었다. 박 할머니의 용기는 둘째 아들 김기동(44)씨의 권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부모와는 따로 살지만 같은 마을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기동씨 부부는 산북초교 창구분교에 올해 신입생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에게 입학을 권했다.
둘째 아들로부터 ‘한글을 본격적으로 배우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은 박 할머니는 선뜻 승낙했다. 혼자보다는 여럿이 배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박 할머니는 이웃집 여 할머니에게도 입학을 권유했다. 여 할머니도 ‘동병상련’하던 터라 쉽게 학교동무가 될 수 있었다.
박 할머니는 남편(75)에게도 같이 배우자고 권했지만 할아버지가 “두 사람 모두 집을 비우면 농사일은 누가 하느냐”며 자신에게 공부할 기회를 양보했다.
할머니들이 사는 마을에서 학교까지는 꼬불꼬불한 산길이다. 걸어서 30분이나 걸릴 정도로 만만치 않은 등·하굣길이다. 입학을 권유했던 기동씨가 책임지고 나서서 매일 자동차기사 노릇을 자처했다.
할머니들의 입학소식을 들은 김미준(65) 할머니도 5일 학교로 찾아와 내년에 입학해 함께 공부하기로 약속했다.
할머니들로 인해 입학생이 잇따르자 산북초교 동창회(회장 엄홍식)와 산북면 개발자문위원회(위원장 유익섭)에서는 이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고 문경시교육지원청도 선물을 전달하고 격려했다.
산북초교 창구분교 관계자는 “인근 마을에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어르신들이 제법 많아 내년에도 할머니·할아버지 신입생들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경=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