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샘] 봄날의 여심

입력 2012-03-05 18:07

風花日將老

佳期猶渺渺

不結同心人

空結同心草

바람에 꽃잎은 날로 시들어 가고

임 만날 기약은 아득하기만 하다

마음을 함께 할 이 만나지 못하고

부질없이 동심초만 엮고 있다

설도(薛濤 770∼832) ‘춘망사’(春望詞) 중 제3수


봄이 다가오고 있다. 사람들은 인생의 추억이 쌓일수록 연록의 봄빛에 더 깊은 감회가 일어난다고 한다. 다감한 이들에겐 또 얼마나 가혹한 시절일까. 김억은 동심초(同心草)라는 제목으로 이 시를 여러 번 번역하였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랴는고.

가곡으로 불리는 이 노래의 2절도 알고 보면 이 시의 번역을 달리한 것뿐이다. 필자는 1절의 가사가 원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동심초에 대해서는 의론이 분분한데, 악부시집(樂府詩集)의 ‘내라’(來羅) 등 많은 문헌의 용례를 보면 어떤 풀이름의 별칭이 아닐까 한다. 이 풀로 동심결을 만들면, 우리의 봉숭아 꽃물처럼 연인이 생긴다는 속설이 혹 있을 법도 한데, 과문하여 아직 찾지는 못하였다.

이 시의 정서는 시경 ‘표유매’에 그 원류가 닿는다. 늦기 전에 나에게 청혼해 달라는 여성화자의 목소리가, 나무에 얼마 남지 않은 매실의 이미지와 함께 떠오른다. “떨어지는 매실이여, 매달린 열매가 일곱이어요. 나를 찾는 선비님들, 그 길일에 맞추어 오세요”

신라 때 설요(薛瑤)는 불도를 닦으려고 출가했다가 어느 봄날, “아름다운 봄풀이여 꽃향기를 풍기려 하네. 장차 어이할거나 이 젊은 청춘을”이라는 시를 짓고 환속하여 시집을 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천지에 약동하는 봄의 기운이 여심의 춘정(春情), 그 몸살을 시로 피어나게 한 것일까. 요즘은 혼자 봄을 나는 싱글이 많으니, 이 봄에 괴로운 심사가 또 오죽이나 할까. 중국 성도의 망강루공원(望江樓公園)에 가면 설도의 묘가 있다. 이 재주 많고 어여쁜 시인은 대밭에 부서지는 영롱한 봄빛 한 자락이나 흠향하고 있을는지? 우리들의 아름다운 젊음이 그렇게 길지 않다. 봄이 와 있다.

김종태(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