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깨진 유리창’ 이론

입력 2012-03-05 18:08

미국의 범죄학자이자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으로 널리 알려진 제임스 윌슨 전 하버드대 교수가 3일 8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82년 3월 심리학자 조지 켈링과 함께 월간 ‘애틀랜틱’에 발표한 이 이론은 건물의 깨진 유리를 방치하면 나머지 창문도 쉽게 망가진다는 내용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는 우리 속담과 비슷하지만 가설을 과학적으로 증명함으로써 위력을 발휘했다.

출발은 1969년 스탠포드대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교수의 실험에 기댄다. 치안이 허술한 골목에 두 대의 자동차를 내버려두었다. 한 대는 보닛만 열어 놓은 채로, 나머지 한 대는 창문을 조금 깬 상태로. 1주일 후, 두 자동차의 상태는 판이했다. 보닛만 열어둔 자동차는 별 이상이 없었으나, 깨진 유리창의 차는 10분 만에 배터리가 없어지고 타이어도 사라졌다. 이어 낙서와 투기, 파괴행위가 나타나 결국 고철더미로 전락했다.

이때 증명된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윌슨 교수에 의해 정교한 학술논문의 틀을 갖추자 뉴욕시가 과감하게 도입하고 나섰다. 첫 적용대상은 범죄의 온상으로 지탄받던 지하철. 교통국이 전동차 6000여대의 낙서를 지우기 시작하자 범죄증가율이 주춤했고, 3∼4년이 지나자 놀랍게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94년에 취임한 줄리아니 시장은 방범정책에 도입해 ‘범죄도시’의 오명을 씻어내는 데 성공했다. 무임승차나 보행자 신호위반, 차유리 닦고 돈을 요구하는 행위 등 작은 범죄를 단속하자 전체 범죄가 75%나 줄어든 것이다.

이 이론은 2005년 미국의 홍보마케팅 전문가인 마이클 레빈을 통해 경영이론으로 확장된다. 그는 2005년에 펴낸 저서 ‘깨진 유리창의 법칙(Broken windows, broken business)’을 통해 작은 실수나 왜곡된 이미지가 기업을 쓰러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병원 주차장에서 기분이 나쁘면 의사에게 화를 낸다” “화장실이 지저분하면 음식 맛도 없다” 식으로 비즈니스에 접목시킨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소비자이론으로 쓰임새가 많다.

윌슨 교수의 부음을 듣는 지금도 깨진 유리창 이론은 유효하다. 단순히 창문이 조금 깨져 있는 데도 사람들은 무너뜨리고 훔쳐가도 괜찮은 상태로 여긴다. 파괴본능이 살아 꿈틀거리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우리 사회를 정돈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해준다. 우리 안에 깨진 유리창은 없는 돌아볼 일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