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강영우를 추모하며

입력 2012-03-04 21:59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코린토스의 왕 시시포스는 죽은 뒤 저승의 가파른 언덕 위로 무거운 바위를 굴려 올리는 벌을 받았다. 꼭대기에 도달한 바위가 굴러 떨어지면 그는 나락으로 내려와 다시 바위를 밀어올린다. 그는 자신을 데리러 온 죽음의 신을 감금하고, 간교한 꾀로 이승에 간 뒤 되돌아오지 않아 신들의 분노를 샀다.

프랑스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의 ‘시시포스의 신화’는 이를 모티브로 했다. 카뮈는 온갖 노고가 도로(徒勞)로 끝나는 부조리한 운명에 맞서는 영웅으로 시시포스를 해석했다. 죽음 앞에 한갓 무의미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 인간이면서 한계상황에 굴하지 않는 용기의 표상으로 그를 그렸다.

시각장애인이었던 강영우(1944∼2012) 박사가 일생 동안 보여준 것도 불굴의 용기였다. 13세 때 아버지를 여읜 그는 이듬해 축구를 하다 망막이 파열돼 시력을 잃었다. 충격을 받은 어머니가 쓰러져 세상을 떠났고, 3명의 동생을 거둬야 했던 큰 누나마저 얼마 뒤 부모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그는 운명에 맞서 싸웠다.

서울맹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에 들어가 1972년 문과대학 차석으로 졸업했다. 그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피츠버그대에서 한국 장애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 세계장애위원회 부위원장과 루스벨트재단 고문 등으로 맹렬하게 활동했다.

지난해 성탄절을 한 달가량 앞두고 그는 췌장암 선고를 받았다. 남은 시간이 2∼3개월밖에 없다는 의료진의 예고대로 그는 지난달 23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은 시시포스와 달랐다. 죽음에 무의미하게 맞서기보다 순응했다. 담담하게 삶을 정리하고 존엄한 죽음을 만들어갔다. 사랑과 감사로 여생을 마무리하는 것이 그의 마지막 도전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세상의 시련들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를 지인들에게 두루 전했다. 자신에게 배움의 기회를 줬던 국제로터리재단에 25만 달러를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그는 사랑하는 이들과의 작별인사 시간을 허락받은 걸 ‘축복’이라고 불렀다.

강 박사의 추도예배가 미 버지니아 센터빌의 한인 중앙장로교회에서 우리시간으로 5일 오전 치러진다. 그를 보내며 치열했던 삶보다 더욱 그를 빛나게 하는 것이 세상과의 아름다운 작별법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것은 숱한 역경을 넘어온 그에게 주어진 훈장이며, 죽음 뒤 세상에 대한 믿음이 있어 가능한 선택이었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