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재의 ‘영성의 발자취’] (9) 밀라노의 성 어거스틴

입력 2012-03-04 18:17

과거를 씻은 참회의 눈물, 진솔한 신앙을 세상에 일깨우다

우리가 영향을 받고 자란 교회사의 대표적인 인물이 있다면 그는 어거스틴일 것이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 이야기도 감동적이지만 ‘참회록’을 통해 고백한 그의 진솔한 신앙이 늘 우리에게 은혜가 되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고대가 낳은 가장 위대한 신앙인 중의 한 명일 것이다. 32세 때 무화과나무 아래서 회심한 이후 76세 때 히포의 감독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는 오늘날 우리가 가진 모든 기독교 신앙의 밑그림을 완성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어떤 신학자는 고대와 중세와 현대를 통해 어거스틴에게서 발견되지 않는 다른 사상이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라고 한다.

그 어거스틴을 밀라노(밀란)에서 만날 수 있을까? 어거스틴은 그의 생애에서 밀라노와 운명적으로 만난다. 한번은 회심으로 만났고 또 한번은 세례로 만났다. 밀라노는 어거스틴의 인생역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을 뿐 아니라 어쩌면 기독교 역사에서도 그곳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밀라노는 오늘날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평원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알프스를 통해 유럽 본토로 이어지는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밀라노는 예로부터 유럽의 중요한 도시였다. 오늘날 일반인에게 밀라노는 패션의 도시요, 사실상 이탈리아의 경제 수도요,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으로 더 유명하지만 우리에게 밀라노는 어거스틴 때문에 그리운 도시다.

그 밀라노에서 어거스틴을 만나는 것은 가능할까? 안내자를 따라 길을 출발했다. 먼저 두오모 성당으로 알려진 밀라노 대성당(Duomo di Milano)을 방문했다. 하늘을 찌르는 성당의 돔은 찬탄 그 자체였다. 크기뿐 아니라 아름다움에 있어서 세계의 어느 성당, 교회를 뛰어넘는 것 같았다. 파리의 노트르담, 독일의 쾰른 대성당과 함께 고딕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이 성당은 1386년에 시작되어 500년 가까이 동안 지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밀라노 대성당의 아름다움은 필자에게 큰 감동을 주지 못했다. 우리에게 감동은 아름다운 건물이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는 스토리가 아닌가? 두오모 성당에서 조금 외곽으로 나갔다. 외곽이라고 해야 두오모 성당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이다. 간판에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산 탬브로조 성당(Basilica di Sant’ Ambrogio)’, 우리말로 하면 성 암부로시우스 성당이다. 이 성당은 주후 379년 암부로시우스에 의해 지어졌다고 하며 지하에는 암부로시우스 유해가 남아 있다. 이 성당은 그 후 많은 개축이 있었고 현재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 되었지만 그 골격은 4세기 비잔틴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이 바로 어거스틴이 암부로시우스의 설교를 듣고 회심했던 곳인가?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눈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열린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 천장을 지탱하며 서 있는 기둥들은 수천년 연륜과 함께 거기 나란히 서 있었다. 반쯤 벗겨진 벽화에는 아직도 뚜렷이 그 시대 사람들이 그렸던 예수님이나 성인들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거스틴이 밀라노에 온 것은 주후 384년이었다. 그에게 밀라노는 새로운 기회의 땅이었다. 오랜 세월, 그는 어머니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방황과 이교에의 탐닉과 성적 방종으로 상처난 인생을 살았다. 그런 어거스틴에게 인생 역전의 기회가 주어졌다. 웅변술과 수사학으로 재능을 보인 그를 로마의 장관 시마쿠스가 발탁하여 밀라노 황제의 궁전 수사학 교수로 보낸 것이다. 그가 만일 밀라노에서 잘 해낸다면 지금까지 그가 한 모든 실패를 일거에 날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거스틴을 위해 전혀 다른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를 위해 하나님이 준비한 사람은 황제가 아니라 설교자 암부로시우스였다. 밀라노에서 그동안 조금씩 열려왔던 어거스틴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암부로시우스를 통해서 빠른 속도로 열리기 시작했다. 암부로시우스는 어거스틴에게 하나님이 준비한 맞춤형 교사였다. 우선 그는 어거스틴이 그동안 추구했던 로마와 헬라 철학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그는 당대의 지식인이었고 또한 달변가였다. 그가 가진 지적, 영적 자산들은 어거스틴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어거스틴은 서서히 그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고 그 결과 불륜의 아내와 결별하며 철학서적 대신에 바울서신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 드디어 결정적인 회심의 시간이 다가왔다. 어느 날 그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감동이 임했다. 강력한 성령의 감동이었다. 그러자 그는 자기도 모르게 집 밖에 나가 정원에 있는 무화과나무로 뛰어갔다. 그때 자기 자신의 내면세계가 보이면서 너무 시시한 일, 과거의 온갖 애착에 묶여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과거는 그에게 “당신은 나를 버리실 건가요? 그러면 이 순간부터 영영 이별이에요”라고 속삭였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이제 과거를 버리고 나에게 돌아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의 친구 알리피우스가 보는 가운데 그는 역사적인 자기와의 싸움을 계속했다. ‘참회록’은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내 영혼이 숨겨진 깊은 부분을 살펴보았습니다. 나는 내 영혼 속으로부터 부끄러운 비밀을 짜내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밀들을 고스란히 내 마음의 눈앞에 집합시켰습니다. 그때 내 속에서는 커다란 폭풍이 일어났습니다. 내 눈에서는 홍수 같은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나는 일어나서 알리피우스 곁을 떠났습니다. 속이 후련할 때까지 울고 부르짖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알리피우스에게 방해받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졌습니다. 나는 무화과나무 아래 몸을 던지고 눈에서 강물처럼 흐르는 눈물을 하염없이 흐르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그것은 당신께 드려진 합당한 제사였습니다.”(참회록 8권 12장 28절).

하나님의 번개 같은 계시는 그때 일어났다. “Tole, lege, tole, lege”(집어서 읽어라. 집어서 읽어라). 어거스틴은 처음에 이 음성을 소년이나 소녀 곧 어린 아이의 음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그는 눈물을 그치고 일어났다. 그리고 친구 알리피우스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를 떠날 때 그에게 맡겨둔 바울서신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는 책을 움켜쥐자마자 서둘러 폈다. 그리고 눈이 처음 닿는 곳을 읽어 내려갔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로마서 13장 13∼14절이었다.

어거스틴은 더 읽고 싶지 않았다. 또 그럴 필요도 없었다. 하나님의 충분한 계시가 임했기 때문이다. 그때가 주후 386년 8월. 어거스틴은 그 다음 해 4월, 눈물을 흘리며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부터 세계 교회사가 새롭게 쓰여지기 시작했다. 어거스틴이 눈물을 홍수처럼 쏟으며 하나님께 돌아온 무화과나무는 지금 어디 있을까? 안내인도 모른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 그 나무도 언젠가 사라졌을 것이다. 그래도 그때만 생각하면 우리의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밀라노는 우리에게 멀지 않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곳이 밀라노이다. 무화과나무는 어디 있는가? 우리가 홍수 같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선 곳이 무화과나무다. 아, 어거스틴의 눈물이 이 시대에 그립다.

#어거스틴, 참회록 통해 신앙 고백

“나는 내 영혼 속으로부터 부끄러운 비밀을 짜내었습니다. (중략) 나는 무화과나무 아래 몸을 던지고 눈에서 강물처럼 흐르는 눈물을 하염없이 흐르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그것은 당신께 드려진 합당한 제사였습니다.”

#어거스틴이 계시받고 읽은 바울서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한신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