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색·언어 왕따없는 ‘오바마학교’ 다녀요”… 다문화 대안학교 ‘지구촌학교’ 개교·입학식
입력 2012-03-02 18:10
한국인 아빠와 방글라데시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영호(10·가명)는 집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겪었던 한국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이 있다.
반 아이들은 ‘깜둥이’라고 놀려대기만 하고 누구하나 따뜻한 말벗이 되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3월 지구촌학교(대표 김해성 목사)를 다니고 난 후부터는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피부색 안 따지고 재밌게 놀아주는 친구가 생기고 그런 친구들과 함께 다니는 학교생활이 너무 즐거웠다. 지난 해 5월 멋진 제복을 입은 경찰관들이 학교를 방문하고 난 이후에는 경찰관이 되는 것이 꿈이다.
2일 지구촌학교가 개교식과 입학식을 가졌다. 지구촌학교는 지난 해 3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사회적응과 교육을 위해 문을 열었지만, 인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가 지난해 11월 교육청으로부터 정식 설립인가를 받고 개교를 준비해 왔다. 학교설립에는 약 15억원이 소요됐다. 익명 후원자가 거액을 내놨고, 포스코, 대우증권, 현대자동차 등이 후원에 참여했다. 김 목사도 2010년 청암봉사상 상금으로 받은 2억원을 보탰다.
이날 개교식에는 가수 하춘화씨,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등 300여명이 참석해 학생들을 격려했다. 하씨는 데뷔 50주년기념 콘서트 수익금 1억2000만원을 기부했다.
50여명의 학생들은 한복과 각 나라의 전통의상을 입고 내빈들의 손을 잡고 행사장으로 입장했다. 의자에 앉아있던 내빈들은 박수로 이들을 반겼다. 입장에 앞서 ‘하나 둘 셋 우리는 하나’의 구호에 맞춰 기념 테이프 커팅을 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마법의성’과 ‘앞으로’라는 노래로 답례했다.
이 학교는 한 학년에 1개 학급, 학급 당 학생수는 15명 내외다. 입학대상은 학부모의 불법체류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국내 소외계층 학생 20%를 받아들여 다문화-통합교육을 시킬 계획이다. 일반 초등학교 다문화학생 위탁교육도 함께 실시할 예정이다.
학비는 전액 무료다. 학교운영에 필요한 예산은 기업과 개인기부금으로 충당한다. 학교수업은 일반 초등학교의 기본 교과과정과 같다. 오전 9시에 시작해 40분 수업하고 10분 휴식하며 오후 2시까지 6교시를 실시한다. 또 오후 4시30분까지 한국어와 모국어, 영어와 중국어 등 방과 후 특별수업을 실시한다. 언어 문제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의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어주기 위한 커리큘럼이다. 특히 매일 1교시는 국어 수업과 함께 인성수업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김 목사는 지구촌학교를 ‘오바마 학교’라고 이름 붙였다. 부모의 사망, 이혼, 편부편모 등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지구촌학교 학생들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처럼 인재로
키우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학생들은 지난 해 10월 오바마 대통령을 학교에 초청하는 편지를 백악관에 보내기도 했다.
김 목사는 “이주민·다문화 부모들이 자녀교육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며 자신들을 위한 학교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면서 “다문화 대안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각계각층의 감동적인 쾌척과 참여, 후원이 이어지면서 지구촌학교가 설립인가를 받게 됐다”고 개교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누구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 받아서는 안 되며 행복할 권한을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면서 “다문화가족 자녀들이 맘껏 꿈을 펼치고 성공할 수 있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영대·조원일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