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로 배우는 ‘견딤의 미학’… 문태준 시집 ‘먼 곳’
입력 2012-03-02 18:06
“오늘은 이별의 말이 공중에 꽉 차 있다/ 나는 이별의 말을 한 움큼, 한 움큼, 호흡한다/ 먼 곳이 생겨난다/ 나를 조금조금 밀어내며 먼 곳이 생겨난다”(‘먼 곳’ 도입부)
이별은 연인들을 단련시킨다. 이별은 사랑을 단련시키며 사랑의 폐활량을 늘려준다. 이별은 먼 곳을 생겨나게 한다. 문태준(42·사진)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먼 곳’(창비)은 표제작에서 드러나듯 이별의 슬픔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꾹꾹 눌러 참는 ‘견딤의 시학’을 보여준다. 습관적인 이별의 방식에 ‘먼 곳’이라는 거리감의 알레고리를 끌고 들어온 점이 우선 새롭다. 시는 이어진다. “갈 데 없는 벤치는 종일 누구도 앉힌 적이 없는 몸으로 한곳에 앉아 있다/ 손은 떨리고 눈언저리는 젖고 말문은 막혔다/ 모두가 이별을 말할 때/ 먼 곳은 생겨난다/ 헤아려 내다볼 수 없는 곳”(‘먼 곳’ 후반부)
‘갈 데 없는 벤치’ ‘누구도 앉힌 적이 없는 몸’이란 시적 화자의 심상을 반영한다. 이별의 본질은 두 번 다시 닿을 수 없는 지점으로의 결별을 의미하므로 ‘닿을 수 없는 먼 곳’을 생겨나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의 심층은 이별에 대해 말하기보다 이별을 견디는 방식에 대해 말하는 데 있다. “새떼가 우르르 내려앉았다/ 키가 작은 나무였다/ 열매를 쪼고 똥을 누기도 했다/ 새떼가 몇 발짝 떨어진 나무에게 옮겨가자/ 나무상자로밖에 여겨지지 않던 나무가/ 누군가 들고 가는 양동이의 물처럼/ 한번 또 한번 출렁했다/ 서 있던 나도 네 모서리가 한번 출렁했다/ 출렁출렁하는 한 양동이의 물/ 아직은 이 좋은 징조를 갖고 있다”(‘아침’ 전문)
새떼들에게 시달리는 작은 나무일지언정 작은 몸 안에는 한 양동이의 물이 출렁거리고 있다는 건 시인이 ‘견딤의 시학’을 수동적인 입장에서 능동적인 입장으로 확장시키고 있는 일종의 발견이 아닐 수 없다. 딴은 이 ‘견딤의 시학’은 시인 자신의 시 쓰기에 대한 비유적 입장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
전통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시인이라는 말을 들어온 문태준에게 전통 서정시의 맥락이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은유를 찾아내는 일은 그만큼 힘들고 더딘 일이기도 하다. 새로운 비유를 찾아낸다 한들 다변화하는 모더니즘 시 계열의 카멜레온 같은 언어에 비해 낡아 보일 수밖에 없는 서정시의 자장을 변화시키는 일이란 고된 일이고 어떤 측면에서 크게 표가 나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문단의 세파에도 불구,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벤치가 문태준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