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좋은 편을 택하는 지혜
입력 2012-03-02 17:52
갈라디아서 2장 11∼21절
베드로가 외식(外飾)했습니다. ‘외식’에 해당하는 원어를 살펴보니 ‘배우’를 가리키는 낱말의 어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무대 위에 올라 있는 유명 인사들은 많은 관심을 받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잊을만하면 터지는 소위 ‘돈봉투 의혹’이나 ‘스캔들’은 점잖은 모습으로 활동하는 유명인사도 차마 드러내지 못할 부끄러움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미국의 유명한 정치가요 학자인 웹스터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평생 당신이 품었던 생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죠?” 웹스터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지금 하는 모든 일을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생각을 할 때 내 마음은 제일 엄숙해집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비난받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안디옥에 도착하자, 이방인들과 식사하던 베드로는 그만 일어서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방인과의 식사는 유대인의 율법에 저촉되기 때문입니다. 흔히 이 부분에서 베드로는 ‘황급히 일어나 음식을 우물거리면서 불편한 자리를 들키지 않기 위해 뛰쳐나가는 모습’으로 그려지곤 합니다. 하지만 좀더 생각해 보십시오. 베드로와 같은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베드로와 같이 깊고 진실한 신앙 경험을 가져 온 사람이, 어찌 자기 자신의 명예만을 위해서 ‘외식’했겠습니까?
그는 유명하고 지혜로운 지도자로서 선택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흥왕하는 교회의 인정받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이제 예수님을 따라 떠돌며 빵과 물을 걱정해야 하는 유랑 종교집단의 일원이 아닙니다. 그는 모두에게 무리 없는 좋은 행동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이방인도 정죄되지 않고, 유대인도 거리낌이 없으며, 자신의 명예도 손상되지 않도록, 아마도 그는 함께 식사하던 이방인들에게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공손하게, 그러나 조금은 황급히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좋게, 좋게만 해결하려다가는 복음의 정신을 잃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때문에 화를 낸 것입니다. 본문 14절을 이렇게 바꾸어 보겠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무대 위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을 차별 없이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증거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어찌 무대 한 편에서는 억지로 율법에 구속되어 살고자 하십니까?”
그것은 위선입니다! 베드로의 선택은 좋은 의도에서 시작되었을 것이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과 일치하지 못한 삶을 보여줌으로써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는 자’(18절)로 스스로를 전락시켰습니다. 정치적으로는 훌륭한 결정이었습니다만, 더욱 큰 견지에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나 차별 없이’(롬 10:12)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신(롬 1:16)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의 기본정신을 훼손하는 불일치를 낳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늘 선택의 문제로 고민합니다. 고민이 너무나도 심해서 깊은 병을 얻기도 합니다. 특히 지도자들에게 주어지는 선택의 부담은 한 개인의 평화를 짓누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선택의 기로에서, 복음의 정신을 잃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지혜롭게 선택하십시오. 어떤 이들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갑니다만(12절), 사도 바울은 진리의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눅10:42).
신용수 목사(용인비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