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불의와 싸운 성직자의 외길 고 고영근 목사를 조명한다

입력 2012-03-02 17:15


[미션라이프] 고영근 목사:너무 가혹하게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긴급)조치법 9호입니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4시에 우리 군인은 혁명사업을 완수하면 모든 정권을 정치인에게 이양하고 군대에 복귀한다. 이렇게 해 놓고서는 지금까지 군대 복귀하지 않고 국민을 속이고 있으니 이것이 혹세무민의 사례입니다. 청중:옳소. 교도관:조용히 해(청중 제지함)….

1일 오후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2층에서는 고 고영근(2009년 작고) 목사의 날선 목소리가 녹음기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슬이 시퍼런 유신치하의 재판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목사 고영근 2주기 추모축제’에 참석한 한승헌(전 감사원장) 변호사와 이만열(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숙명여대 명예교수, 유가족 등 200여명은 뜻을 굽히지 않는 고 목사의 목소리에 깊은 감회에 젖었다.

한승헌 변호사는 추모사를 통해 “고영근 목사님은 하나님의 의를 이 세상에 구현하기 위해 불의와 싸운 성직자였다”며 “우리는 고영근의 정신과 가치를 이어받아 꽃피울 것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이만열 교수는 “특히 유신치하에서 시국기도회가 아닌 부흥집회에서조차 불의한 집권자를 공격하는 ‘정치적’ 설교를 했다고 해서 여러 번 투옥 당하는 등 말로 다할 수 없는 수많은 고난을 겪으셨다”며 “이러한 고 목사의 숭고한 발자취는 좀 더 알려져야 할 ‘참 성직자의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막내 딸 고영휘(47·목민교회 집사)씨는 “아버지는 유신독재의 법정 안에서도 목사 고영근과 성도들은 하나님을 의롭게 찬양했는데 이렇게 자유로운 지금의 시대에서 예배가 축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이번 2주기를 ‘추모축제’로 이름 붙였다”며 “아마도 아버지는 하늘에서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진척 상황을 지켜보면서 기도하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1933년 평북 의주에서 태어난 고 목사는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불의한 집권자를 공격하는 설교를 하다 긴급조치 9호로 두 차례 구속되는 등 26회나 투옥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특히 고 목사는 설교 등을 통해 집권자에 아부·협력하는 기독교 목사에 대해서도 질타를 서슴지 않았다. 1980년 한국목민선교회를 창립, 많은 저술을 남겼을 뿐 아니라 설교·강연의 원고, 편지 특히 비전향장기수들로부터 받은 편지 및 일기를 남겼다. 2002년 말년에는 생활개혁운동본부를 창립, 십계명을 기초로 국민윤리를 확립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고 목사는 98년 한국인권문제연구소 제1회 인권상을 수상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