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체는 힘이 세다?… ‘나체의 역사’

입력 2012-03-01 19:32


나체의 역사/필립 카곰/학고재

나체는 힘이 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은 옷을 차려입은 자들을 압도한다. 인간은 옷을 벗으면 공격받기 쉽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이상하게도 강해진다. 정치적 시위에 나체가 자주 이용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시위자들은 몸을 노출해 복합적인 의미를 전달한다. 도발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기존 질서 내지 현 상태에 도전하며, 두렵지도 않고 숨길 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명분에 힘을 싣는다.

나체와 정치의 연관성은 나체 조각상으로 지위와 권력을 표현한 것에서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영국의 저명한 작가이자 미술평론가인 존 버거는 이렇게 썼다. “네이키드(naked)는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누드(nude)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혼자서는 인식하지 못한다. 네이키드가 누드가 되려면 누군가에 의해 하나의 대상으로 보여야 한다. 누드는 결코 옷을 벗고 있다는 비난을 받지 않는다. 누드는 옷의 일종이다.”(8쪽)

비키니 시위에서 걸 그룹의 노출 사고까지 공공 노출은 항상 논쟁의 중심이다. 클릭 한 번만으로 포르노를 다운받을 수 있고 모두가 발가벗고 있는 대중목욕탕은 아무렇지 않게 드나들지만 거의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 인간의 벗은 모습은 아직도 우리에게 충격을 준다. 개인 블로그에 성기 이미지를 올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이 불구속 기소되는가 하면 무대에서 성기를 보여준 프로그램은 폐지됐고, 지난여름에는 서울 청계천에서 비키니 차림으로 일광욕 하던 외국 여성들이 온 언론을 장식했다. 사람들은 나체에 열광하거나 언짢아하는 상반된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나체야말로 우리가 모두 똑같은 인류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나체에 대한 관점은 종교적 입장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심리학이 출현하기 전 인간과 인간 자신의 몸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구체화한 것이 바로 종교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종교가 사적 공간을 제외하고는 나체를 용인하지 않을 것 같고, 나체로 참여하는 종교 활동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진리는 역설의 옷을 입고 있다는 말이 있다. 종교도 진리를 추구하면서 인간의 형상에서 풍부한 근거를 얻었다. 몸은 한편으로는 신의 창조물로서, 기독교 용어를 빌리자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

한편으로 우리가 두 개의 서로 다른 몸 사이의 상호 작용과 매개물을 통해 존재하는 한, 몸은 고통과 고통의 원인이 발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몸은 신전도 될 수 있고 감옥도 될 수 있다. 몸이 신전이 된 경우가 예수이다.

옷을 벗는 것은 누구에게는 종교적인 행위일 수 있고 누구에게는 정치적 행위일 수 있다. 사실 정치 영역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더 빈번하게 옷을 벗었다. 이는 여성들이 남성보다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에 관심이 많다는 주장을 확인해 준다.

나체에 대한 모순적 태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정치 영역이다. 부자와 권력자들은 부와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옷을 입고 장신구를 걸쳤지만 매춘부, 노예, 광인들은 벌거벗었다. 현대에도 권력자들은 방탄 리무진과 경호원이라는 보호 ‘의상’이 필요하고, 권력이 없는 사람들은 정치적 시위에 나체를 이용한다.

2002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 마린 카운티의 여성 50명은 나체의 힘을 이용해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임박한 이라크전에 반대하며 잔디밭에 알몸으로 누워 평화를 뜻하는 ‘PEACE’를 만들어보였다. 전 세계적으로 200만명이 넘는 지지자를 거느린 동물권리 보호단체 ‘페타(PETA)’는 연간 2800만 달러(약 290억원)를 쓰면서 나체 시위를 벌인다. “모피를 입느니 차라리 벗겠다’ ‘피부만으로 만족하고 동물들을 그냥 두라’ 등은 페타의 단골 구호이기도 하다.

그린피스가 2007년 지구변화운동의 일환으로 스위스 알레치 빙하 위에서 600명의 알몸 시위자들을 세워 놓고 세계적인 사진가 스펜서 튜닉으로 하여금 사진을 찍게 해 보급시킨 것은 정치적 목표를 위해 나체를 동원한 대표적 경우이다. 마찬가지로 정치인들 역시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행동하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나체로 선거 포스터를 만들기도 한다.

나체는 수 세기 동안 억압되고 수치스럽게 여겨졌지만 이제 도덕적 우위를 넘보기도 한다. 사람들은 아프가니스탄이 공격받고 있을 때 전투 재킷을 입고 포즈를 취한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같은 정치인들은 존경하지 않지만 나체 시위자들과 자선기금 모금자들의 모습에서 존경심을 느끼기도 한다. 나체는 점점 권력이 되고 있다.

프랑스 작가이자 철학자인 알랭 드 보통은 나체를 선호하는 초현실주의자, 다다이스트, 히피, 펑크족들을 일컬어 ‘부르주아 주류에서 벗어나 새로운 독립적 가치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나체가 되고 나체를 보여주는 것은 세상 속의 존재가 가지는 타고난 속성을 반영하는 것이다.”(312쪽)

나체는 아직도 사회적으로 억제돼 있고, 적절하지 않은 때와 장소에서 옷을 벗으면 법의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나체에 대한 이런 금기 덕분에 나체는 강렬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노출이 허용되지 않고 충격적인 것으로 남아 있는 한 나체는 계속 힘을 지닐 것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영국 작가이자 심리학자. 정주연 옮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