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의 사막의 구도자들] 병원의 기원은?

입력 2012-03-01 18:26

오늘날 우리는 몸이 좀 아프다 싶으면 으레 병원에 의존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이렇게 병원의 혜택을 누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4세기 수도자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병원을 만들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4세기 초 기독교인들에 대해 무지할 뿐더러 특히 열심있는 신앙인들이었던 수도적(혹은 복음적) 삶을 살았던 사람들에게 대해선 더더욱 무지하다. 하지만 우리가 병원을 드나드는 만큼, 알게 모르게 그 사람들의 덕을 어느 정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두었으면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니 어찌 뽐 낼 수 있으랴. 역사를 아는 만큼 신중해지고 겸손해 질 수 있다.

4세기 기독교인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병원을 만들었던 것은 왜일까? 결론부터 말해보자. 4세기의 열심 있는 신앙인들은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마 25:36)로 요약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소중하게 담았기에 병원을 만들었다. 주리고 헐벗고 목마른 자, 그리고 병든 자와 옥에 갇힌 자와 나그네 된 자를 돌보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돌아본 것이라는 선언은 수도자들로 하여금 병원을 만들고 일평생 사회적 약자를 위해 헌신하게끔 만든 성경 속 성경이었던 것이다.

이 말씀을 얼마나 가슴 깊이 새겼든지, 어떤 기독교인들은 “병든 자는 우리의 주님이다!”라는 표어를 갖고 2000명의 환자를 돌보는 대형 병원을 섬기기도 했다. 예수의 말씀을 골간으로 교회와 수도원에서 병원을 만들어 운영했기에, 돈을 받고 치료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372년 수도자 출신의 감독 바실리우스가 가이샤라라는 도시에 사회복지센터를 만들었다. 이 복지센터는 병원, 고아원, 여행객을 위한 무료 숙소, 가난한 자를 위한 무료음식 보급소 등의 복합 기능을 갖춘 곳이었다. 황제 발렌스가 카이사레아를 방문했다가 로마제국도 감히 상상치 못하던 사회복지센터를 교회가 만든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아 거액을 기부했다고 한다. 4세기 이후 약 1000년 동안 교회와 수도원은 병원을 운영하던 주체였고 예수의 말씀에 근거한 무료병원과 사회복지의 전통은 이어졌다. 16세기부터 서서히 시의회와 국가가 기독교 병원을 인수해 운영하기 시작했지만, 예수의 말씀에 근거한 무료병원의 전통은 계속되었다. 이런 역사를 알면 프랑스와 영국 등 병원의 역사가 가장 오래된 국가의 오늘날 병원 시스템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몇년 전 서울에서 큰 딸 아이의 덧니 교정을 하게 됐다. 방문하는 치과마다 300만 원을 선금으로 지급해야 교정을 시작할 수 있었고 총 비용은 최소 500만 원이 들어간다고 했다. 서민들이 쉽게 감당하기 힘든 큰 비용이었다. 영국의 경우 어린이 치아 교정은 무료다. 필자가 연구차 현재 잠시 머무르는 캐나다의 경우도 18세까지의 치아교정은 치료의 개념에 근거해 무료였다. 18세 이후에야 성형의 개념으로 간주, 비용을 받는다고 한다.

내가 프랑스에서 유학생 신분으로 공부하던 시절,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아내가 산부인과 전문 병원에 다니는데 임신 3개월부터 프랑스 정부에서 산모 영양비로 매월 약 20만 원을 우리에게 지급했다. 뿐만 아니라 아내가 분만 시 2인실에 입원했는데 입원 과 분만 비용 일체가 무료였다. 프랑스 시민권이 없는 한국인 유학생 신분이었는데도 말이다. ‘영국과 프랑스처럼 1500년을 넘나드는 기독교적 병원 전통을 갖춘 나라와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라고 한탄하지 말자. 주일날 교회 가는 신자들의 비율이 이만큼 되는 곳이 우리나라 말고 세계 어디에 또 있는가.

(한영신학대 교수·캐나다 몬트리올대 초청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