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차’ 주인공 김민희 야누스적인 팔색조 연기… “시나리오에 확 끌렸어요”
입력 2012-03-01 18:01
결혼 한 달을 앞두고 부모님 댁에 내려가던 중 휴게소에 들른 문호와 선영. 차창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문호가 커피를 사러 간 사이 선영은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돌아온 문호를 기다리고 있던 건 문이 열린 채 공회전 중인 승용차뿐이다. 몇 번을 걸어봐도 꺼져 있는 휴대전화. 빗속으로 약혼녀가 사라졌다. 미친 듯이 선영을 찾아나서는 문호. 그녀는 과연 어디로 간 것인가.
오는 8일 개봉하는 영화 ‘화차(火車)’는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선영을 찾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정체와 비밀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다. 일본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벗기면 벗길수록 반전과 충격으로 다가오는 이야기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알고 보니 선영은 이름도 가짜고 직장과 고향이며 주민등록번호도 모두 엉터리다.
가녀린 여성이면서도 야누스적인 이중성을 지닌 선영을 연기한 김민희(30)의 변신이 놀랍다.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문호에게 접근해 사랑을 나눌 때는 순수한 표정을 짓고, 자신의 과거가 서서히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무서운 눈빛을 가진 180도 다른 성격의 인물이 된다. 그래서 김민희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시사회 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시종 즐겁고 밝은 표정이었다. “지난해 여름 폭염과 폭우 속에 전국을 돌며 촬영하느라 모두들 고생 많았는데 좋은 결과가 나와 만족스러워요. 영화 전체의 느낌과 선영이 느끼는 감정 표현, 즉 그녀의 슬픔과 고통이 모든 배우와 스태프의 조화 속에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아 기분 좋습니다.”
드라마 ‘학교 2’에 이어 모델로 활동하다 다시 드라마 ‘굿바이 솔로’ ‘연애결혼’, 영화 ‘여배우들’ ‘모비딕’에서 색깔 있는 연기를 선보인 그는 ‘화차’의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확 끌렸다고 한다. “언제나 이런 자극적인 역할을 해보고 싶었는데, 선영이란 캐릭터는 너무나 변화가 많고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어서 ‘바로 이것이다’ 싶었죠. 그녀가 겪었던 일들에 살을 붙이는 재미도 클 것 같았고요.”
영화에서 그가 맡은 배역은 문호의 약혼자이자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베일에 가려진 여자이면서 살인사건의 용의자이기도 하다. 시시각각 변하는 캐릭터와 심리 묘사가 쉽지는 않았을 터. 그는 “감정의 골이 아주 높은 역할이다 보니 감정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었다”며 “가짜 약혼녀 행세를 할 수밖에 없었던 선영의 입장에 동화됨으로써 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인터뷰 중 그가 몇 차례 언급한 ‘센 역할’ 중에서도 어떤 장면이 가장 힘들었을까. “선영의 정체가 드러나는 펜션 장면이었어요. 처음엔 잘할 수 있을까 막연했습니다. 피범벅이 된 분장을 하고 바닥에서 기고 쭈그리고 그런 자세였죠. 무릎에 상처도 나고 발목도 부었지만 이 장면을 잘 마무리하고 나서 제 스스로 어느 정도 만족스러워 기뻤어요.”
‘낮은 목소리’ 이후 7년 만에 장편 영화를 연출한 변영주 감독은 김민희에게 “가냘프게 보이지 말고 연민을 끌어내려 하지도 말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김민희는 “감독님의 말대로 선영은 무섭지만 불쌍하고 가련한, 그러면서도 사랑을 갈구하는 여성”이라며 “소소한 행복을 찾기 위해 누구든 가면을 쓰기도 한다. 내 이야기, 내 친구 또는 가족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으로 연기했다”고 말했다.
‘지옥으로 가는 불수레’를 뜻하는 ‘화차’는 신용카드 불량, 개인파산, 금융에 의해 노예가 된 사람들의 얘기와 더불어 현대 도시인의 사랑을 스릴 넘치게 풀어냈다.
실종된 약혼자 선영을 찾아나서는 문호 역은 이선균이, 선영의 과거를 추적하는 전직 경찰 역은 조성하가 맡았다. 김민희는 “배우들과 호흡이 너무 좋아 좋은 작품이 나온 것 같다”며 동료애를 과시했다.
극중 깜찍하고 발랄한 이미지로 각인된 그로서는 이번 작품으로 연기의 높은 산 하나를 넘은 셈이다. 찬사를 보태자면 ‘김민희의, 김민희에 의한, 김민희를 위한’ 영화라고나 할까.
그는 “전도연 선배를 존경한다”며 “흘러가는 세월처럼 천천히, 자연스러운 매력을 보여주며 좋은 작품에 좋은 연기를 하는 배우로 인식되고 싶다”고 희망사항을 밝혔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