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휴먼 플라나리아
입력 2012-03-01 18:03
불사(不死)의 존재로 동양에 삼천갑자 동방삭이 있다면 서양에는 생제르맹 백작이 있다. 둘 다 실체가 불명확하기는 해도 이런 저런 기록에 등장한다. 중국 전한(前漢)시대에 살았다는 동방삭은 엄밀히 말해 ‘불사’라기보다 장수의 대명사다. 그래도 1갑자가 60년이니까 18만년을 산 셈인데 그 쯤 되면 불사신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생제르맹 백작은 18세기 프랑스가 주 활동무대였지만 20세기에 이르기까지 260여년 간 변치 않은 모습으로 유럽 전역과 미국에서 ‘목격’됐다. 그에게는 이런 전설들이 따라붙는다. ‘솔로몬 왕, 시바의 여왕과 안면이 있으며, 예수와도 만난 적이 있고 특히 그가 물을 포도주로 만들 때 옆에 있었다고 함.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와는 함께 십자군 전쟁에서 싸웠음.’
영생을 향한 인간의 꿈은 오래다. 그 간절한 소망은 허황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연금술이나 연단술 같은 현실의 노력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물론 그런 노력은 모두 실패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명제는 절대불변의 진리였고 지금도 진리다. 그러나 이제 어쩌면 그 진리가 더 이상 진리가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일컬어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걸 빼고는 뭐든 할 수 있다’던 과거의 수사(修辭)가 더 이상 올바르지 않듯.
주로 호수, 연못 등 민물에 사는 편형동물인 플라나리아가 영원히 죽지 않는 이유를 규명했다고 영국 노팅엄대 연구팀이 밝혔다.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 최신호에 실린 연구결과에 따르면 연구팀은 플라나리아가 유전자를 끊임없이 복제하면서 노화를 극복해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플라나리아는 개체를 죽지 않게 하는 효소를 무한 생성해 근육 피부 내장은 물론 뇌까지도 재생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또 염색체 말단을 보호하는 말단소체가 노화방지에 주요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이에 따라 플라나리아의 메커니즘을 응용하면 인간의 노화를 늦추고 손상된 세포를 재생할 길을 찾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무병장수, 나아가 영생하는 ‘휴먼 플라나리아’의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무병장수까지는 몰라도 영생불사가 과연 행복한 것일까?
조나단 스위프트는 ‘걸리버 여행기’에서 ‘불사의 나라’를 묘사하면서 불로(不老)가 없는 불사의 비참함을 지적했거니와 설령 늙지 않는 불사라 해도 마찬가지다. 혹자에 따르면 인간 최대의 적인 권태를 어찌할 것인가? 무엇이든 끝은 있어야 하는 법이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