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재엽] 해군기지, 왜 제주도인가
입력 2012-02-29 18:07
제주도 남부에 건설되고 있는 ‘민군(民軍) 복합형 관광미항(美港)’ 형태의 해군기지를 둘러싼 갈등이 좀처럼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기지의 건설 여부가 확정된 것은 2007년 5월이지만 여전히 현지 주민 및 외부 반대단체들과 당국간의 마찰이 진행 중이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금년 4월로 예정된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이 문제가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은 ‘제주 해군기지 문제의 전면 재검토’를 총선 주요 공약으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자신들의 집권 시절에 추진이 결정되었고, 공개적으로 그 필요성을 인정했던 국책 사업인데도 말이다.
‘해역함대’와 ‘기동함대‘의 차이
그동안 정부 당국과 필자를 포함한 다수의 국방 관련 학자들은 여러 기회를 빌어서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 설명해 왔다. 주요 논리들은 다음과 같았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리적 숙명, 수백해리에 달하는 주변 해역의 경제적 가치, 독도 문제, 한국 경제의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는 해상교통로(SLOC) 방어, 그리고 중국·일본의 해군력 증강에 맞서기 위한 대응 능력의 확보 등을 위해 제주기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 국민으로서 바다를 굳건히 지킬 수 있는 강한 해군의 필요성을 부정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의문이 남는다. 바로 “왜 하필 제주도에 그 기지를 건설해야 하는가? 다른 지역에 건설해도 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해군의 ‘해역함대’와 ‘기동함대’의 차이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해역함대는 동해의 제1함대, 서해의 제2함대, 남해의 제3함대처럼 특정 해역을 방어하기 위해 고정적으로 배치되는 군함들로 구성한다. 반면 기동함대는 해양 분쟁이 발생할 경우 후방에서 해역함대를 지원하기 위해 투입되거나, 적 해군력의 후속 증원을 차단 및 저지하는 일종의 ‘응원군’ 역할을 담당한다. 2010년 2월 해군은 세종대왕함급 이지스 구축함을 비롯한 대형 군함 10여척을 보유하는 제7기동전단을 창설했는데, 이 부대가 바로 기동함대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향후 해군이 제주도에 배치하려는 부대이기도 하다.
이런 기동함대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기동함대를 수용, 배치할 기지는 지리적으로 자국 해역의 중심부에 위치해야 한다. 그래야 동·서·남·북 전(全) 방향으로, 마치 부챗살처럼 해군력을 적시적소에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태평양에서 주력 해군기지로 운영하고 있는 하와이, 괌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에서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지역이 바로 제주도다. 제주도의 지리적인 위치는 남해를 통해 동해와 서해를 연결하는 길목에 해당하며, 기동함대가 배치된다면 동·서쪽 양방향으로 중국과 일본의 해군력을 동시에 견제할 수 있다. 독도나 서해 5도가 과연 이런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군사적·지리적 측면의 필요성
이처럼 군사적·지리적인 측면에서 제주도에 기동함대의 수용, 배치를 위한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충분히 그 필요성이 입증될 수 있다. 그동안의 기지 건설 과정에서 드러났던 현지 주민 보상, 절차 및 환경 보전문제, 그리고 최근 지적된 설계상의 오류 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군 당국의 보다 성의있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평화=비무장’이라는 이분법적인 흑백 논리를 내세워 해군기지 건설 자체를 부정, 방해하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평화는 ‘한국을 위한 평화’이지, ‘외세를 위한 평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재엽 한남대 초빙교수 국방전략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