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임미정] 서양인과 결혼하면 죄?
입력 2012-02-29 18:07
미국에 머물 때 친구 K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가족이 오래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 한국말보다 영어가 더 편한 친구이다. K는 미국에 유학 온 프랑스 남자인 G와 무척 긴 시간을 사귀었다. 20대 중반부터 사귀었는데 30살이 넘어서야 결혼하게 되었다.
K의 집은 무척 보수적이라 그 긴 시간 동안 부모님의 결혼허락을 받지 못했다. 기다리다 지친 이들은 지인 20여명만 초대해 그들만의 결혼식을 하기로 했다. 결혼식에 초대받아 가보니 하객 대부분이 서양 친구들이었다.
신랑신부에게 인사를 하고 테이블에 앉았는데 저쪽에서 한 동양인 부인이 퉁퉁 부은 얼굴로 쳐다보기에 다가가서 인사를 건넸다. K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딸이 가족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결혼하게 된 것이 애통해 울고 계신 것이었다.
딸을 끔찍이도 아끼던 아버지는 서양인과 결혼하게 된 데 노해서 결혼식에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말이 통하는 우리에게 아버지가 속상해하는 것, 그리고 K가 이렇게 초라하게 결혼식을 올리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등을 털어놓으셨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시면 이럴까 해서 위로는 해드렸으나 다른 한쪽에서 너무나 행복하고 자랑스럽게 아들을 바라보는 G의 부모님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파리에서 결혼식을 위해 온 부모님이 G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부모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축복과 사랑이 담겨 있는 듯했다.
K와 G의 결혼식 날 양가 부모님의 대조되는 표정은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마침 결혼식에 참석할 당시에는 내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고, 내게는 부모가 된 후의 첫 나들이여서 그랬는지 부모의 마음이 더 예민하게 들어온 사건이었다.
K의 부모님이 속상해하는 것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한국인은 유난히 타인종과의 결혼에 배타적인 면이 있어 아무리 미국에서 교포로 오래 살아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K의 부모님이나 G의 부모님이나 자식이 다른 인종과 결혼한 것은 마찬가지인데도 두 부모님의 태도는 천지차이였다.
부모가 성년이 된 자식에게 줘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K의 부모님이 자식에게 선택권을 주고 그 선택에 대해 믿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버지의 입장에선 괘씸한 딸이었고 K가 잘못한 것이었겠지만 K가 그려가는 인생이 아버지가 디자인한 그림과 달랐을 뿐이다.
모든 인간에겐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는 숨겨진 더듬이가 있다. 그것은 예민한 감각이라 옆에서 무리하게 조종하면 망가지기도 하고 나중에 그 감각을 다시 찾기가 무척 힘들어진다. 자녀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 자녀가 성인이 되어갈수록 그 권리의 폭을 최대치로 확장해주고 그것을 인정해주는 것이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임미정 한세대 교수 하나를위한음악재단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