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케이블카 논란] ‘케이블카 유치’ 싸고 지리산 공동체 마을들이 갈라졌다

입력 2012-02-28 18:33


환경부, 국립공원내 시범사업 대상지 6월 선정

환경부는 오는 6월까지 국립공원 내 케이블카 시범사업 대상을 선정할 계획이다. 경쟁이 치열한 지리산권 지방자치단체들은 사활을 걸고 유치작업을 펼치고 있다.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 부근까지 가는 노선이 꺼져가는 지역의 관광경기를 되살릴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러나 전국적 도로 확·포장 바람과 함께 관광 및 산행 패턴이 체류형에서 통과형으로 변했다. 케이블카가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한 것이다. 환경부는 백두대간 마루금 통행금지 등 생태계 핵심축 보전정책을 펴면서도 핵심축 턱 밑까지 케이블카를 허용하려 하고 있다. 현장을 취재해 논란의 원인과 대안을 살펴봤다.

◇구례군의 영고성쇠=‘꿈은 이뤄진다! 지리산 케이블카 구례군 선정 D-100일.’ ‘우린 求禮 지리산이 좋다! 지리산 노고단 케이블카 적극 지지한다.’

지난 23일 케이블카 건설을 추진 중인 전남 구례군이 출발점(하부정류장)으로 정한 산동면에 들어서자 온천지구 입구부터 케이블카 유치를 위한 플래카드가 펄럭였다. 텅 빈 주차장을 지나 당동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간판 바로 위 공터가 눈에 들어 왔다. 구례군은 이곳에 3층 높이의 케이블카 출발시설(연면적 2000㎡)을 건설할 예정이다. 가까이에 성삼재가 보였다. 왼편에 보이는 만복대는 눈을 뒤집어 쓰고 있다. 케이블카는 안전 때문에 출발점에서 도착점인 노고단이 보여야 하지만,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동행한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은 “산동면 주민들은 후덕한 지리산세를 닮아 전통을 존중하고 온순하게 농사지으며 살아 왔지만 10여년전에 온천지구가 개발되면서부터 인심이 사나워졌다”고 말했다. 주차장과 도로변 곳곳에는 높은 보상금을 노리고 심어 놓은 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M부동산 주인 A씨는 “케이블카 소식 이후 땅값이 다시 올라 지금은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은 평당 20만∼40만원을 호가한다”면서 “관광특수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매물도 별로 없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A씨처럼 오는 6월에 구례군이 케이블카 건설대상으로 지정될 것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 만약 구례군이 유력 후보가 아니라면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형국이다.

우리나라 대표적 장수마을인 구례군은 지리산권 지방자치단체들의 영고성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지리산 성삼재를 관통하는 861번 지방도로가 포장되고, 지리산온천이 개발되면서 구례군은 한때 흥청망청했다. 그러나 몇 년 후부터 등산객과 관광객은 861번 일주도로를 타고 성삼재까지 올라가 지리산 종주를 시작해 경남 함양·하동, 전북 남원으로 내려갔다. 구례는 이들이 밥 한 끼도 안 먹고 스쳐 지나가는 곳이 됐다. 지리산 관통도로는 지리산 탐방행태를 체류형에서 통과형으로 바꿔버려 구례군 관광에 부메랑이 됐다. 17, 19번국도 확장, 88고속도로, 전주∼순천 고속도로 개설도 이런 추세를 가속화했다. 게다가 외환위기 이후 전국 온천 경기는 죽어갔다.

◇치열한 4파전, 반목하는 지리산권 공동체=역시 관광객과 인구가 줄어든 남원시도 절박하기는 어느 지자체 못지않다. 남원시 관계자는 “뱀사골에서 반야봉 밑의 중봉으로 가는 남원시 코스가 가장 경관이 뛰어난 곳”이라며 “환경부가 환경만 따지고 경관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종착점을 반야봉이 아닌 중봉으로 했고, 모두 자연휴식구간으로 출입이 통제되기 때문에 연계 등산 우려가 없다”고 말했다. 전체 구간 6.6㎞ 가운데 자연환경보존지구를 관통하는 구간이 4.3㎞로 지리산 4개 케이블카 후보구간 중 가장 길다.

구례군은 환경적 배려를 내세운다. 온천지구∼KBS 중계소 하단 사이 4.3㎞ 구간은 자연보전지구를 지나지 않고 공원자연환경지구 2.5㎞만 지나간다. 특히 구례군은 케이블카를 건설하는 대신 지리산 관통도로의 구례 구간에서 차량출입을 통제하겠다고 밝혔다. 이 도로는 여름과 가을 성수기에 교통체증과 매연이 심하고 사고가 잦다. 지난 6년간 교통사고로 7명 사망했고 로드킬로 빈발한다. 구례군 김채홍 부군수는 “관통도로를 폐쇄하고 케이블카와 저공해 셔틀버스 등 친환경 교통수단만 이용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남 산청군은 중산관광지∼제석봉하단 구간 5.4㎞를 후보지로 제시했다. 450억원을 들여 8인승 곤돌라를 운영할 계획이다. 이 구간 역시 자연보존지구 2.3㎞가 포함돼 있다. 산청군 기획감사실 정운석 과장은 “국립공원 밖의 하부정류장은 관광개발지구로 이미 주차장도 있어 추가할 시설이 거의 없다”면서 “제석봉 하부 공터에 상부정류장을 세우고 데크를 설치해 연계등산을 막겠다”고 말했다.

가장 뒤늦게 참여한 경남 함양군은 백무동∼장터목대피소 하단부 4.1㎞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계획안을 제출했다. 5년간 240억원이 투입된다. 자연보존지구 2.8㎞가 사업구간에 있다. 함양군 관계자는 “백무동∼장터목산장의 하동바위 등산로를 폐쇄하겠다”고 말했다.

◇갈등 부추기는 이율배반적 환경부=그러나 이들 지자체는 모두 경제적 타당성을 세심하게 따지지 않는 분위기다. 관계자들은 비용대비 효과분석(B/C) 결과 공개를 거부했다. 이들은 “어떻게든 B/C가 1이 넘게 나오게 돼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리산을 사랑하는 산청사람들’의 최세현 대표는 “경남 통영 미륵산 케이블카가 9000원을 받는 점을 감안할 때 거리가 3배 이상인 중산리∼제석봉 코스는 왕복 2만5000원을 받아야 하는데 4인 가족이 10만원을 주고 타겠느냐”고 반문했다.

게다가 지리산 관통도로 구례구간의 차량통행 금지는 남원시의 반대 때문에, 함양군의 하동바위 등산로 폐쇄 역시 등산객의 반발로 이뤄지기가 거의 불가능한 약속이다. 그러다보니 정부가 이미 한 지자체를 낙점했다는 유언비어도 나돈다. 이런 ‘묻지마 개발, 카더라 선동’ 식의 과열경쟁과 상호 비방전은 오는 6월 시범사업 선정 이후 심각한 후유증을 예고한다. 지역 환경단체들은 외로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모든 갈등은 환경부가 일으켰다. 환경부는 지난해 자연공원법 시행령을 개정해 국립공원 안 자연환경보존지구에 설치할 수 있는 케이블카 길이제한을 2㎞에서 5㎞로 완화했다. 케이블카의 장점과 단점을 따지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연공원 권역 지자체의 관광산업의 지속가능성과 수익성을 확보할 새 모델의 개발이 필요하다.

구례=글·사진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