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5주년 ‘창조문예’ 발행인 임만호 장로 “윤동주 뒤이을 기독문학가 키워야죠”
입력 2012-02-28 18:25
순수 기독교 문학잡지인 월간 ‘창조문예’가 2월로 창간 15주년을 맞았다. 변변한 소설 시장도 형성되지 못한 한국 기독 출판계 토양에서 시와 수필, 평론 등의 작품을 소개하는 ‘순수 기독교 문학잡지’의 길이 얼마나 험난했을 지는 가히 짐작이 된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잡지가 여태껏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1997년 2월의 창간호이후 한번도 빠짐없이 매달 잡지가 발행됐다. 창간 15주년 특집호는 181호째.
‘돈 안 되는 잡지’가 15년 명맥을 이어 올 수 있었던 데에는 장인정신 투철한 누군가가 있었을 터. ‘창조문예’는 발행인 임만호(73) 장로를 제외하고는 이야기 될 수 없다. 임 장로의 뚝심과 고집이 매년 ‘죽을 뻔’ 한 잡지의 생존을 가능케 했다.
시인이자 ‘크리스챤서적’ 대표인 임 장로는 기독 출판계의 산 증인이다. 대학 졸업 이후 한국대학생선교회(CCC)에서 5년간 간사로 사역한 그는 76년에 문서 사역의 비전을 품고 크리스챤서적을 세웠다. 지금까지 1300여종의 책을 출간했다. 기독서적 총판도 겸해 그동안 약 800만권을 보급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를 쓴 임 장로가 ‘창조문예’ 발행을 결심하게 된 것은 고교 은사인 김신철 선생의 간곡한 청 때문. 김 선생은 임 장로에게 “기독교인구가 1000만 명에 달하는 한국에 제대로 된 기독교 문학지 하나 없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순수문학잡지를 시작할 것을 부탁했다.
수지를 맞춰보니 경영학적 관점에서는 도저히 승산이 없었다. 한 달 후 김 선생이 다시 찾아와 머뭇거리고 있던 임 장로를 재촉했다. “자네는 어린 시절부터 문학적 재능이 많지 않았는가? 하나님이 이런 일을 위해 쓰시려고 작정하셨던 거지. 주저 말고 빨리 시작하게.” 스승의 호통에 가까운 권유에도 시작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수지타산을 생각하면 과연 누가 이 일을 시작하겠는가. 결국 내가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간호를 발행하니 과연 적자가 발생했다. 한달에 500여만 원씩 손해가 났지만 다른 사업을 통해서 메워나갔다. 적자는 났지만 뜻 깊은 시도였다. 지금까지 212명이 시와 소설, 평론 등 각 장르별로 등단했다.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 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목사, 성서공회 전 총무 민영진 목사 등 목회자들도 창조문예를 통해서 등단 할 수 있었다. 잡지는 매달 2000∼2300권 정도 발행되고 있다.
“윤동주를 필두로 박목월 박두진 김현승 김춘수 황순원 등 한국 문학을 이끈 기라성 같은 분들이 기독교인이었지만 정작 기독교 문학은 꽃을 피우지 못했습니다. 사실 불교문화가 우리나라 문학사조에 끼친 영향이 많습니다. 한국 사회는 불교적 작품이 나오면 종교 편향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듯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적 작품은 언제나 종교와 관련해 바라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런 가운데 창조문예가 기독교 순수 문학의 보루 역할을 하게 된 것이지요. 어디서도 작품을 선보일 기회가 없었던 기독 작가들의 등용문이 되었습니다.”
그는 한국 기독교 문학의 부흥을 염원하고 있다. 기독교 문학을 통해서 한국 문학이 세계로 진출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그동안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들이 130명 정도 됩니다. 대개가 서구 기독교권 사람들입니다. 아직 한국인 가운데 노벨상을 탄 사람은 없습니다. 한국적 사고가 넘치는 작품들은 서구인들에게 다가가기 힘듭니다. 차라리 기독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을 갖고 도전한다면 가능하리라는 생각입니다.”
현재 창조문예에는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의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열림원)가 영역돼 게재되고 있다.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총신대 등에서 가르친 조신권 박사가 번역에 참가했다. 7월 경 연재가 끝나면 미국과 영국의 유수한 기독출판사에 의뢰해 현지 출간을 할 예정이다.
“기독 소설도 포기할 수 없어요. 잡지에 꾸준히 소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허망한 일 같지만 언젠가는 꽃필 날이 있다는 기대를 합니다.”
그는 출판계의 앞날에 대해서는 낙관했다. “종이 책의 장래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자책 시장은 꾸준히 넓혀질 것입니다. 결국 출판은 영원합니다. 누구든지 소질과 사명이 있다면 시도할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책과 잡지 한 권이 한 인간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내가 한 일이 타인의 인생 행보에 선한 영향을 줬다면 그 얼마나 보람 있는 일입니까?”
임 장로의 인생 성경 구절은 야고보서 4장17절.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그가 선한 뜻으로 시작한 창조문예는 이제 청소년기를 넘어 청년의 시기로 들어가고 있다. 그 선한 뜻에 무성한 열매가 맺히기를 기원해 본다.
글·사진=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