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배준호] 가계저축 늘리는 정책 나와야

입력 2012-02-29 00:47


“우리나라 금융은 3류다.” 심한 표현이지만 필자가 강의실에서 곧잘 사용하는 말이다. 십수 년 전부터 사용해온 이 말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은 문제다. 1997년의 IMF 외환위기, 2004년의 카드대란, 2008년 이후의 저축은행사태 해결에 들어간 공적자금만도 수십조원이 넘을 터이다. 백미는 국민들에게 “저축은행은 사기꾼”이라는 인식을 안겨준 2011년의 부산저축은행 그룹의 비리였다. 이곳에 대한 감독업무를 맡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눈을 뜨고 지켜봐야 할 때와 곳에서 눈을 떼고 있었다. 그 결과 부실채권규모를 키워 국민부담을 늘렸다.

수년째 우리 경제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온 낮은 가계저축률도 금융당국의 정책실패다. 2010년의 가계저축률 4.3%는 OECD 평균(7.4%)보다 낮고 1988년의 6분의 1 수준이다. 원인으로 근로소득 증가세 감소, 사회보험료 부담증대, 고령화 등이 지적되지만 이들은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다. 더 큰 원인은 카드사용과 가계부채에 대한 금융당국의 잘못된 정책대응이다.

금융감독 행정은 여전히 3류

DJ정부는 경제위기 탈출을 명분으로 카드산업에 대한 규제를 풀었고, 이는 다수의 국민을 신용불량자로 만든 2004년 카드대란의 단초가 되었다. 이후 5년 사이에 가계저축률은 2.6%(2008년)로 떨어졌다. 또 금융당국은 2005년 이후 5년 만에 금융기관 주택담보대출잔고가 50%나 증가할 때도 감독책임을 방기했다. 이 무렵 금융기관은 대출시 원리금 상환 대신 이자만 갚는 방식을 대폭 늘려 실거주 목적 아닌 투기 목적의 주택구입을 장려했다. 3년 정도의 거치기간을 연장해주는 방식으로 저축 몫인 융자금 상환을 막았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중 80%가 이자만 내는 채권이었다(2010년 6월 기준).

“카드는 일정 수준의 신용이 있는 사람에게 발급하고, 대출금은 쓸 곳과 갚을 능력을 보고 빌려준다”는 금융의 ABC가 지켜지지 않았다. 감독을 책임진 금융당국과 건전한 영업이익을 추구해야 할 금융기관이 2인3각으로 유착과 부조리에 가담한 것이다. 지금 우리 경제를 이끄는 주체는 재벌계 기업군이다. 2010년 3월, 2년여 만에 경영일선에 복귀한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1995년 4월 베이징의 한 모임에서 “기업이 2류라면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발언하였다. 17년이 경과한 지금 그가 다시 입을 연다면 어떻게 말할까. “일부 기업은 1류가 되었는데 금융감독 행정은 여전히 3류….”

노후대비 저축 부족이 35%에 달한다는 조사(2010년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가 경고하듯 가계저축률을 높이지 않으면 우리는 장래 심각한 노인빈곤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지금도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최고(45.1%, 2009년 기준)인데 금융저축 증대 등 자조노력 없이는 노인빈곤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없다.

체크카드 사용을 권장하자

가계부채 증가가 이자지급액을 늘려 저축률을 낮추는 것은 맞지만 저축률을 더 떨어뜨리는 요인은 이자만 갚는 상환방식이다. 과거 당연히 그랬듯이 원금을 이자와 함께 갚도록 하면 저축률은 상당부분 올라갈 수 있다. 주택담보대출잔고 중 원리금상환 비율을 50% 수준으로 끌어올리자. 빚을 늘리는 신용카드보다 통장 잔고를 사용하는 체크카드 사용을 권장하고 세제우대를 확대하자. 노령연금액을 낮춰 후세대 부담을 줄이면서 자조노력을 강조, 9%대 가계저축률을 지속하는 독일을 배우자.

그리하여 “우리나라 금융, 2류는 된다”고 외칠 그날을 앞당기자.

배준호 한신대 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