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대통령의 사과
입력 2012-02-28 18:10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누가 가장 연설에 능했는지를 가려내기는 쉽지 않다. 시대상황이 천차만별이고 연설의 성과인 감동이나 파급력을 계측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체로 에이브러햄 링컨이나 존 F 케네디와 로널드 레이건 등이 명연설가의 반열에 올라있다. 미 시사주간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가 2007년 선정한 미 대통령의 7대 명연설도 대략 이 범위 안에 들어있다.
남북전쟁의 와중이던 1863년 링컨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짧은 말로 미국 건국이념을 설파했던 게티스버그 연설과 1865년 국가 단합을 강조한 두 번째 취임연설도 명연설로 꼽힌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1933년 3월 대공황의 늪에 빠진 미국을 향해 “두려워할 유일한 대상은 두려움뿐”이라고 했던 연설과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자문해보라”던 1961년 케네디의 취임연설도 있다. 레이건이 1987년 독일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베를린 장벽 철거를 외쳤던 연설, 제럴드 포드의 1974년 닉슨 사임 발표, 아들 부시 대통령이 2001년 9월 14일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던 연설도 미국민의 가슴에 울림을 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달변으로는 둘째가 서러운 수준이다. 유머를 섞은 진솔한 화법에 젊은 정치가의 열정이 배어나는 연설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건국의 아버지들의 꿈이 오늘날 살아있는지 궁금하다면, 오늘 밤이 그 답변”이라며 흑인 대통령의 당선을 알렸던 2008년 대선 승리 연설과 미국의 변화와 책임을 강조했던 이듬해 취임 연설은 특히 인구에 회자된다.
순발력 뛰어난 언변으로 정적들을 코너로 몰아넣던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엔 구설에 올랐다. 미군의 코란 소각 사건과 관련해 지난 23일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앞으로 사과 서한을 보낸 일 때문이다. 공화당 유력 대선 주자인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오바마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과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릭 샌토럼 전 의원은 “고의가 아닌 행동에 사과하는 것은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공격했다.
오바마의 사과 이후에도 아프간 상황은 호전되지 않고 있어 사과의 효과가 별로 없는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미 언론에서도 대통령의 사과는 드문 일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발 빠르고 솔직한 소통법이 국가간 사안, 적어도 아프간에는 통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소통 부재가 대통령의 최대 약점으로 지적되는 우리로서는 낯선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