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김명호] 강영우의 삶과 죽음

입력 2012-02-28 18:10


강영우 박사의 삶과 죽음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지난 23일 그의 가족으로부터 소천 소식을 듣고 그와 나눴던 여러 번의 대화들이 생각났다. 지난해 9월 초 강 박사 부부와 우리 부부는 한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했다. 그들 부부와 나눈 대화에서 우리 둘은 시각장애인 강영우로부터 힘과 열정을 느꼈다. 어떤 비장애인과도 차별되는 힘이었다.

단지 그가 시각장애인으로 소년가장이었고, 장애를 딛고 미국 대학(피츠버그대)에서 박사학위를 땄으며, 8년 동안 백악관 장애인위원회 정책차관보로 일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왜소한 체구에 상대방과 눈을 마주 보고 얘기할 순 없지만, 비장애인이 가지지 못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감사의 힘, 긍정의 힘, 소통의 힘이었다.

감사의 힘. 그의 말은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로 끝난다. “내 삶을 봐, 더 낮아질래야 낮아질 수 없잖아. 그런데 지금은 오라는 데가 너무 많아. 내 얘기를 듣고 싶다는 거야. 감사한 일 아냐? 시각장애로 할 수 없는 것도 많지만, 그것 때문에 이룬 일도 많아. 나는 많은 은혜를 받았어.”

시각장애 때문에 아내 석은옥 여사를 만났고, 시각장애 때문에 오히려 한 가지,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내가 쥐어준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반찬 위치를 찾는 것이 가끔 어색했지만,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그에게 보이지 않는 것은 그냥 작은 불편함인 듯했다. 혼자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장애인 전용차량의 도움을 받아 혼자서 외출도 한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태도, 이것으로부터 나오는 그의 언행은 참으로 당당하다.

소통의 힘. 그와 여러 번 대화를 나눠봤지만, 두 아들 얘기만 나오면 신이 난다. 큰아들은 지난해 가을 워싱턴포스트가 선정한 최고의 안과의사로 선정됐고, 작은아들은 백악관 최연소 특별보좌관(입법 담당)이다. 둘 다 하버드 대학을 나왔다. 그에게 두 아들을 잘 키웠다고 말했더니, “부모와의 소통, 지식 교육보다는 인성과 가치 교육, 창의성과 집중력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그가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아이들의 자존감이다. 큰아들이 초·중교 시절 5년 연속 영재반에 탈락하고 자포자기했을 때, 그는 어린 아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너도 할 수 있다는 자존감을 키워줬고, 그 아들은 안과 의사가 돼 아버지의 눈을 고쳐주겠다는 비전을 갖게 됐다.

긍정의 힘. 눈이 먼 소년가장은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어 공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점자 책자도 없던 시절에 미래의 아내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연세대 교육학과에 진학했다. 남들보다 5년 늦었다. 처음엔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대학이 입학원서를 받아주지도 않았다. 동아리마다 가입을 거절하자 직접 독서 동아리를 만들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한국 최초의 정규 유학생, 최초의 미국 대학 박사 등등 그는 인생 고비마다 방해되는 요소를 긍정의 힘으로 격파했다. 그는 나에게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끈기가 생긴다”고 말한다.

그날 식사 자리에서 석 여사는 우리 부부에게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는’이라는 제목의 찬송가를 나지막이 불러주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점에 강 박사의 몸에서는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다. 지난 1월 초 그와 마지막 통화를 했다. 목소리가 많이 좋아졌다고 했더니 “모든 것이 감사하고, 다 정리하고, 작별인사도 다했다. 그래서 그렇지. 이제 아름다운 세상으로 떠나는 것만 남았어”라며 웃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도 당당했다. 마치 한 여정을 끝내는 것 같았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자기의 믿음대로, 말씀대로 살다, 자신의 표현대로 ‘아름다운 세상’으로 떠난 강영우였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