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해외 장병들 목숨이 걸렸는데 눈감아줘?”… 엉터리 방호장비 납품 파문

입력 2012-02-27 23:55


해외에 파병된 우리 군인들에게 엉터리 방호장비가 지급돼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할 뻔했다. 이 과정에서 영관급 현역장교가 군사기밀을 누출하고 엉터리 장비 납품을 눈감아준 사실까지 밝혀졌다. 경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한 그 시간 국립대전현충원에서는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됐다가 탈레반 무장세력의 자살폭탄 공격으로 숨진 고(故) 윤장호 하사의 5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7일 아프간 오쉬노부대에 납품하는 방호용 주파수교란장비를 저가의 중국산 부품으로 만들어 납품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상 사기 등)로 대테러장비 제조업체 대표 김모씨(33)를 구속했다. 경찰은 또 계약체결 과정에서 제조업자 김씨에게 레바논에 파견된 동명부대에서 운용 중인 주파수교란장비의 차단 주파수 대역을 누설한 육군 현직 A소령(35) 등 2명과 장비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묵인한 방위사업청 사업담당자인 B중령(43) 등을 국방부 조사본부에 인계했다.

경찰에 따르면 2000∼2006년 폭발물제거전문가(EOD)로 활동한 뒤 전역한 김씨는 2007년 군납업체를 차렸다. 그는 2010년 6월 저가의 중국산 부품을 고가의 미국산 주파수교란장치로 둔갑시켜 대당 5000만원짜리를 2억5000만원으로 부풀려 5대를 납품해 10억3500만원을 챙겼다.

김씨는 2010년 레바논에 파병 중인 동명부대에서 주파수교란장비 운용책임자로 근무하던 A소령의 도움을 받았다. A소령은 동명부대에서 사용 중인 영국제 주파수교란장비의 주파수 차단대역과 장비 제원표, 안테나 배치표 등 주요 정보를 부대 내 인터넷을 사용해 개인 이메일로 전달했다.

방위사업청 편제장비사업팀 소속인 B중령은 2010년 5월 실시된 성능시험 검사에서 김씨가 납품한 장비의 문제점이 드러났음에도 합격을 시켜준 혐의를 받고 있다.

오쉬노부대는 2010년 7월 아프간 재건지원단을 경호하기 위해 만든 부대다. 장교와 부사관 및 항공, 통신 등의 주특기병 350여명으로 구성돼 있다. 주파수교란장치는 테러범이 반경 200m 이내에서 리모컨 등으로 작동하는 자살폭탄의 주파수를 12시간 이상 지속적으로 차단해 우리 장병의 생명을 보호하는 주요 장비다.

김씨가 납품한 장비는 테러범이 사용하는 원거리 리모컨은 물론이고 흔히 구할 수 있는 단거리 차량용 리모컨 주파수조차 교란시키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원일 기자 wc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