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철환]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입력 2012-02-27 18:25
“파는 강아지도 하나만 남으면 보기 딱해요. 못나서 마지막까지 남았다 생각하면…”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들 중에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들이 3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따돌림 당하는 사람의 심정이 얼마나 참혹한지 나는 가까운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내 친구 봉구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짠해진다.
오래전 겨울이었다. 저녁 무렵, 봉구의 전화를 받고 인사동으로 갔다. 찻집 앞마당엔 잎이 모두 떨어진 감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봉구는 감나무를 바라보며, 지난 봄 주인 몰래 그 집 감나무에서 따간 어린잎으로 차를 끓여 마셨는데 맛이 기막혔다고 웃으며 말했다. 봉구는 멀뚱히 나를 바라보다가 내가 쓰고 있던 소설의 근황을 물었다. 이런저런 말로 둘러댔지만 앞날에 대한 확신도 없이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을 때였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몇 년째 소설에만 매달리고 있었던 터라 형편도 넉넉지 않은 시절이었다.
저녁을 먹고 봉구와 함께 인사동 길을 걸었다. 길가 한쪽에서 할머니가 강아지를 팔고 있었다. “와! 예쁘다.” 봉구가 호들갑을 떨며 강아지 앞에 쪼그려 앉았다. 싸게 줄 테니 한 마리 사가라고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가 건넨 말에 봉구는 멋쩍게 웃기만 했다. 여섯 마리 있었는데 이제 두 마리 남았다고, 네 마리는 진즉에 팔았는데 두 마리가 남아 애를 태운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할머니, 강아지들도 예쁜 강아지가 먼저 팔리지요?” 봉구가 강아지 한 마리를 들어 올리며 할머니에게 물었다. “그렇겠지요. 아무래도 예쁜 놈들이 먼저 팔리고 미운 놈들이 나중에 팔리겠지요. 그래도 이렇게 두 마리 남았을 땐 마음이 괜찮은데 한 마리만 남으면 보기 딱해요. 제일로 못나서 마지막까지 남았겠지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잖아요. 사람이든 짐승이든 못난 것들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법이니까요. 싸게 드릴 게 한 마리 사가세요.”
할머니는 우리를 향해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할머니, 죄송한데요. 차 마시고 밥 먹느라 돈을 다 써버렸어요.” 봉구는 반죽 좋은 웃음을 흘리며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도 봉구를 보며 호물호물 웃었다.
봉구와 헤어져 버스 정거장으로 갔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어린 딸아이를 생각했다. 딸아이는 오래전부터 강아지를 사달라고 내게 졸랐었다. 다음날이 딸아이 생일이라 마음은 더욱 짠했다.
다음날, 아내와 딸아이와 함께 명동으로 갔다. 칼국수도 먹고 딸아이의 머리핀도 샀다.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딸아이 생일선물로 강아지 인형도 사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작은 목소리로 딸아이에게 노래를 가르쳐주었다. 아이는 강아지 인형을 안고 내 품에서 잠들었다. 차창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동안에도 눈은 계속 내렸다. 잠에서 깨어난 딸아이는 눈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을 때 딸아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와 아내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좁은 마당에 서있는 살구나무 아래 강아지 한 마리가 눈을 맞고 있었다. 살구나무 밑동에 끈으로 매어져 있는 강아지는 겁먹은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딸아이는 몇 걸음을 달려가 강아지를 품에 안았다. 살구나무 아래 편지가 놓여 있었다. 봉구가 남기고 간 편지였다.
도둑처럼 주인도 없는 집 담을 넘었다. 네 딸내미가 생일 선물로 강아지를 받고 싶다고 했다면서. 어젯밤 너하고 헤어진 뒤 강아지 파는 할머니한테 다시 갔었다. 남은 두 마리 중에 조금 더 미운 놈을 사가지고 왔다. 우리 집에서 하루 재우고 오늘 데려왔어. 이 강아지 있잖아. 학교 다닐 적 내 모습을 많이 닮은 것 같다. 나처럼 못나고 공부도 못하는 애들은 어디 가나 찬밥이었으니까…. 예수님은 못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을 제일로 사랑하셨는데 말이야. 힘내라. 너는 멋진 소설가가 될 거야….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봉구의 편지를 손에 들고 눈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리는 눈송이가 자꾸만 눈에 흐렸다.
이철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