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샘] 봄마중
입력 2012-02-27 18:26
千山萬山雪
二月三月時
驚見寒溪上
辛夷花一枝
산마다 눈덮인
이월 삼월 어름
반가워라 시린 개울가
목련꽃 한 가지
박세당(1629∼1703) 서계집 권3 ‘남산에서 고산으로 가는 길 옆의 개울 기슭, 문득 반쯤 핀 목련꽃을 보고’
묵은 겨울의 막바지. 풋풋한 햇나물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바람 끝은 여전히 알싸하지만 등을 간질이는 볕살엔 따스함이 묻어난다. 행인들의 발걸음은 한결 가볍고, 새 계절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설렘으로 들떠 있다. 이제 아침 출근길은 산새처럼 재잘거리는 학생들로 붐비겠고, 머잖아 남쪽에서 꽃 소식도 올라올 것이다. 이맘때쯤엔 마중 삼아 봄 시를 읽는 것도 좋으리라.
위는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이 함경감사로 있던 조카 박태상(朴泰尙)에게 찾아가며 읊은 시이다. 산간에 늦은 눈이 왔나보다. 채 녹지 않은 산을 배경으로 목련꽃 한 가지가 폈다. 화사한 꽃망울이 낡은 화폭을 뚫고 나온다. 이른 봄이 주는 이 산뜻한 정취는 무르익은 봄의 난만한 풍경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건성으로 보면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산엔 아직 겨울의 살풍경이 그대로이고, 행인들의 외투는 여전히 두텁다. 하지만 조금만 더 찬찬히 살펴보면 곳곳마다 봄의 징후로 가득하다. 하늘엔 봄물의 물빛이 감돌고 돌 틈엔 눈록빛 풀들이 돋고 있다. 산새소리는 맑고도 드높고 바위너설 아래로는 샘물이 흐른다.
이 미묘한 변화를, 자잘한 생명들의 힘찬 몸짓을 시인이 놓칠 리 없다. 17세기 과천의 수리산 아래에 은거하던 전원 선비 이응희(李應禧, 1579∼1651)는 이른 봄의 풍경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岸雪仍含凍 沙泉欲放流
瓊敷梅?嫩 金細柳絲脩
‘산자락 눈은 아직 얼어있는데
모래톱 샘물은 막 흐르려는듯
매화 망울 부풀어 구슬처럼 곱고
긴 버들가지엔 금빛 물 올랐다’
오늘,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밖으로 나가 봄을 맞아보자. 가슴을 열고 봄볕에 광합성을 하다 보면 내 몸에도 연록빛 물이 오를지 모를 일이다.
이규필(성균관대 대동문화硏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