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사법연수원

입력 2012-02-27 18:25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을 반드시 수료해야 한다. 따라서 사법연수원은 우리나라 법조인의 산실로 꼽힌다. 사법시험은 행정고시나 외무고시처럼 국가공무원을 뽑는 시험이 아니라 변호사 자격을 주는 일종의 자격시험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법연수원을 수료한다고 판사나 검사로 임용되는 것은 아니고 대법원이나 법무부에서 시행하는 임관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사법연수원이 생기기 이전에는 서울대학교에 일반대학원과 같은 과정인 사법대학원을 설치해 사법시험에 통과한 인재들을 교육시킨 뒤 판·검사 임용자격과 함께 석사학위도 줬다. 그러다 1971년 사시 12회 합격생(1970년 합격) 49명과 기존의 사법대학원 14기생 32명을 첫 사법연수원생으로 받아들여 본격적인 연수원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300명 시대로 접어든 1980년대 이전까지는 연수원을 수료하면 대부분 판사나 검사로 임용됐다. 따라서 이곳은 사시 합격의 고생을 보상받는 중간 정류장쯤으로 인식됐다. 연수원생 시절 술에 취해 파출소에서 소란을 피워도 경찰관이 아무 말 없이 집까지 배웅해 주더라는 무용담을 법조인들로부터 여러 차례 들은 적이 있다.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2년 동안 함께 지내다 보니 우정도 각별해 동기생끼리 정을 이어가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꼈던 이른바 ‘8인회’다. 사시 17회 출신인 노 전 대통령은 대학을 나오지 않아 연수원 동기를 대학동기생처럼 가까이 했다고 한다. 실제 노 전 대통령 시절 그의 연수원 동기들은 대부분 승진하고 요직을 차지했었다.

2000년대부터 사시합격자 수가 1000여명으로 대폭 늘면서 연수원 분위기도 많이 바뀌기 시작했다. 임관이 어려워지자 연수원에 들어와 사시 공부를 다시 한다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연수원이 자리 잡은 경기도 고양시 장항동 일대 빌딩에는 연수원생들에게 세미나용 룸만 빌려주는 업종이 성행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국민권익위가 최근 연수원을 수료한 변호사를 6급 주무관(옛 주사)으로 특별채용한 뒤 이런저런 뒷말이 많다. 그렇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판사나 검사가 법조인의 꽃이라고 할 시대도 아니다. 이미 법조일원화로 훌륭한 변호사가 판사나 검사로 임용되는 길이 활짝 열려 있다. 어디서 일하든 법조인답게 리걸 마인드(legal mind)를 갖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