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교사의 자격
입력 2012-02-27 18:29
스티브 잡스는 천성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권위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학생이었다. 잡스는 몬타로마 초등학교에서 릭 페렌티노라는 친구와 함께 다니며 온갖 말썽을 피웠다.
잡스는 말한다. “‘애완동물 데리고 등교하는 날’을 공지하는 포스터를 만들어 붙였어요. 교실 전체에서 개들이 고양이를 쫓아다니고 난리도 아니었지요.” 3학년 담임인 여교사의 의자 밑에 폭음탄을 설치했다가 터뜨려 담임교사가 신경 경련을 일으키게 하기도 했다.
잡스 인생 바로잡은 힐 선생
그런 잡스가 4학년에 올라갔을 때 스스로 ‘내 인생의 성자 중 한 분’이라고 고백한 담임교사 이모진 힐을 만난다. 잡스를 몇 주간 지켜본 힐은 잡스에게 뇌물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알아낸다. 힐은 수학문제지를 주면서 풀어 오라고 권한다. 잡스가 ‘이분이 정신이 나가셨나?’ 하고 생각할 즈음 힐은 거대한 막대 사탕을 꺼낸다. 그 사탕이 잡스에게는 지구만큼 커 보였다고 한다. 힐은 문제를 거의 다 맞히면 사탕뿐 아니라 5달러까지 얹어 주겠다고 제의한다. 잡스는 이틀 만에 문제를 풀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더 이상 뇌물이 필요 없어졌다. 더 많이 배우고 선생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잡스에게 생긴 것이다. 잡스는 회상한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저는 틀림없이 소년원이나 들락거리고 말았을 거예요.”(‘스티브 잡스’·민음사)
1983년 봄 서울사대부설초등학교로 1주일간 교생실습을 갔다. 어린이들과 재미있게 지냈고 많은 것을 깨달은 교육실습이었다. 자취생이었던 나는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했다. 점심시간에 “선생님은 배가 아파서 점심을 먹지 않는다”고 둘러댔더니 어린이 5명은 “우리도 밥을 굶겠다”고 ‘투정’을 부렸다. 어린이들의 해맑은 눈망울이 가슴을 찡하게 했다. 배식을 담당하던 한 어린이의 어머니가 얼른 급식을 갖다 줘 난감한 상태를 모면했다.
어느새 어린이들과 헤어질 때가 됐다. 귀여운 아이들에게 마음의 선물을 하고 싶었다. 공부 잘하는 4명에게는 일기장 편지꽂이 등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놀기 좋아하는 봉국이에게는 딱히 줄 선물이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 끝에 돼지저금통으로 결정했다. 준비한 선물을 하나씩 건넸다.
봉국이에게는 “용돈을 저금했다가 부모님 생일이나 어버이날에 선물을 해드리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다른 4명에게는 “선생님에게 편지를 써 달라”고 부탁했다. 모두들 환한 얼굴로 선물을 받았다. 아이들 손을 번갈아 잡아 주며 교문까지 나와 배웅을 했다. 어린이들과 가볍게 포옹을 했고, 그들은 내 볼에 뽀뽀를 해줬다.
교직은 天職이란 성찰 필요
교생실습을 마치고 분주한 대학 생활을 하면서 어린이들을 잊고 지내던 어느 날 두툼한 편지를 받았다. 겉봉에 카네이션을 붙이고 봉투 안에는 진아 유정 윤진 복태 봉국이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사연을 읽고 적잖이 놀랐다. 5학년인 봉국이가 교내 글짓기대회에서 ‘돼지저금통과 교생 선생님’이란 글로 장원을 했다는 것이었다.
어린이들이 변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어린이들은 교사가 자기들을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 단박에 아는 재주가 있다. 눈빛 하나만 보고, 말 한마디만 들어도 바로 알아차린다. 최근 담임을 기피하는 교사들이 많다고 보도된 적이 있다. 복수담임제를 추진한다는 정부 방침까지 나왔다. 보수나 고과 차원에서 담임교사를 우대하는 것은 교육당국의 몫이다. 교직은 지식만을 전수하는 직업이 아니라 아이들을 사랑으로 감싸는 천직이라는 점을 교사들이 깊이 성찰했으면 좋겠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