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고혜련] ‘국민 할아버지’

입력 2012-02-26 18:12


요즘 회자되고 있는 우스개 한마디.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남편은?” “전국노래자랑 사회자 송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즉각 반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년 아내들을 미소 짓게 하는 이 조크에도 그럴싸한 이유가 있다. 85세 고령에도 돈 벌어오는 현역인데다 건강하지, 일주일에 반은 전국으로 출타중이라 집에서 식사할 일도 별로 많지 않아서란다. 게다가 광고모델에 출중한 노래와 유머 솜씨까지 갖췄으니….

이 조크에는 그 연세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분에 대한 칭송과 애정이 깃들어 있다. 한국 방송사에서 한 프로를 맡아 30여 년간 사회를 본다는 것 자체가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다. 그것도 부침이 심한 연예계에서. 그의 사생활이나 철학은 잘 모르지만 그런 일 하나 갖고도 존경받기에 충분하다.

내가 남몰래 존경하는 분이 또 계시다. 작곡가 박재훈 목사다. 올해 90세를 넘긴 그분이 3월 초, 나흘 동안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창작 오페라 한 편을 올린다니 경이로운 일이다. 이름 석자는 낯설지만 그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모든 세대에 친숙한 동요, ‘어머니의 은혜’ ‘엄마, 엄마 이리와 요것 보세요’ ‘펄펄 눈이 옵니다’ ‘산골짝의 다람쥐’ 등과 찬송가 ‘눈을 들어 하늘 보라’ 등을 작곡한 분이니 말이다. 그의 이번 작품은 일생을 ‘나환자들의 아버지’로 살다 간 손양원 목사의 감동적인 삶과 순교, 신앙을 다룬 내용이다.

그는 지난 9년간 이 작품을 위해 두 가지 암, 당뇨와 투병하면서 한쪽 눈도 잃었고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게 됐다. 전국순회공연도 계획 중이라니 더욱 감탄할 일이다. 누가 그들을 노인이라고 할 것인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온몸으로 열변을 토하는 것 같다. 이 두 분이 밖으로 보여주는 이런 모습만을 보고도 존경심이 샘솟는 것은 그 하나로 열을 알 수 있다는 인생살이의 경험 때문이리라.

그 지표는 그 사람의 열정과 뚝심, 인내와 노력,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 및 인간관계, 철저한 자기 관리 등을 총체적으로 아울러 말해 주기 때문이다. 멘토가 귀한 세상에 누군가를 존경의 시선으로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며 고마운 일이다. 그분들이 거기 그렇게 우뚝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많은 위로와 힘을 얻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것조차 기적’인 병든 몸과 사투를 벌이면서 위인의 숭고함을 기리겠다는 사명감으로 헌신해온 박재훈 목사의 집념과 열정, 특유의 푸근한 입담으로 사회를 따듯하게 밝히며 57년간 무대를 지켜온 송해 사회자의 프로 정신, 그들의 삶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인생 100세 시대, 온몸으로 가르침을 전하는 두 ‘국민 할아버지’의 건강과 행복을 빈다. 그래서 이분들이 전 세계 최장수 작곡자, 사회자로 만방에 기록되길 온 국민이 응원하자.

고혜련 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