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고독한 실험 이젠 끝내렵니다”… 임효 ‘화업 30년’ 결산 전시

입력 2012-02-26 17:06


전북 정읍이 고향인 임효(57·사진) 작가는 초중등 시절 각종 사생대회를 휩쓸었다. 그의 꿈은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모의 반대에 부닥친 그는 혼자 상경해 홍익대 미대에 진학했다. 아르바이트로 안 해본 게 없었다. 졸업 후에는 여자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어 미술학원을 운영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하지만 작업에 대한 열망을 삭일 수 없어 전업작가가 됐다. 30년 전 일이다.

한지를 이용해 부조를 만들고 한국적인 이미지를 살린 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러다 몇 번의 개인전을 치렀으나 그림이 팔리지 않아 돈도 떨어지고 막막했다. 그런 그에게 1994년 외교부에서 출품을 의뢰했다. 당시 태국 방콕에서 열린 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 정부 간 고위급회의 건물에 걸 그림이었다. 4m짜리 대작 ‘일월도’를 그렸다.

이후 전통과 현대가 접목된 한국화의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면서 국내외 전시를 통해 호평받은 그는 2009년 독일로 그림 공부를 떠났다. 함부르크에서 1시간 반가량 떨어진 메클렌부르크주 바드 도버란의 레지던스에서 추운 겨울을 보냈다. 폭설이 내려 대부분 시간을 이곳에서 지내면서 그의 작업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

“고독과 싸우다 문득 하늘을 보니 고향에서 보던 하늘과 똑같은 거예요. 하늘은 모두와 공유하고 똑같이 나눠쓰는 것이라는 생각에 하늘을 많이 그리게 됐지요.”

매일 아침 혼자 식사하는 동양 남성을 안쓰럽게 여긴 이곳 안주인은 그의 테이블에 서양란 한 송이가 담긴 화병을 올려놓았다. 말이 통하지는 않았지만 낯선 땅에서 혼자 지내던 그에게 안주인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그 꽃은 작품 ‘교감’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작가는 따뜻한 마음이 담긴 난에 집중하고자 그림에서 화병을 치우고 ‘심화(心花)’라는 작품으로 다시 그렸다.

독일에서 시작된 교감과 내면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하늘’ ‘연기(緣起)’ 시리즈 등으로 이어졌고 형상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고독을 담아내려니 작업도 추상으로 옮겨갔다. 손수 만든 한지에 옻칠을 하기도 했다. 옻칠을 올리면서 배경은 대체로 어두워졌으나 오히려 ‘우주의 색’이 나와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그는 2010년 이후 올해까지 만든 신작 60여점을 모아 다음 달 6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인전 ‘자연과 생명’을 연다. ‘임효의 화업 30년-그림 속에 놀다’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전시는 ‘청년 작가’를 졸업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지금까지 쉼 없이 다양한 실험과 모색을 해온 ‘청년 작가’였다면 이젠 예술가로서 자신을 책임지고 저만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경지에 들어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번 전시에 맞춰 30년간 그린 수천 점 중 700여점을 화집으로 묶어냈고 그림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담은 시와 산문, 그림을 엮은 에세이집 ‘그림 속에 놀다’도 펴냈다.

“60대에는 ‘청년 작가’를 벗고 70대에는 많은 사람이 바라봐주는 그런 예술세계를 갖고 싶습니다. 80대까지 삶이 허락된다면 ‘우리다움’을 치열하게 추구한 예술가라는 평가를 받고 싶고요.”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