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장학회 주식 반환 청구소송 기각… 법원 “강압에 의해 넘겨진 사실 인정되지만 시효 지나”
입력 2012-02-24 18:37
고(故) 김지태씨가 강압에 의해 정수장학회에 재산을 넘긴 사실은 인정되지만 무효가 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으며, 시효도 지나 반환 청구를 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7부(부장판사 염원섭)는 24일 5·16쿠데타 직후 강압에 의해 부산일보와 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주식을 넘겼다며 김씨 유족이 정수장학회(당시 5·16장학회)를 상대로 낸 주식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고청구를 기각했다.
소송의 쟁점은 강박에 의한 주식증여 행위가 무효인지와 취소권 발생 여부다. 무효여부와 관련해 재판부는 “김씨가 국가의 강압에 의해 5·16장학회에 주식 증여의 의사표시를 했음이 인정된다”며 “다만 강박의 정도가 김씨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할 여지를 완전히 박탈당한 상태라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무효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권총을 차고 “살고 싶으면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라”고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자율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재판부가 당시 쿠데타 직후의 긴박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법리적으로만 판단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취소권 발생여부에 대해서는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취소권은 그 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 내에 행사해야 하고 그 행사기간을 제척기간으로 보아야 하는데, 증여가 이뤄진 1962년 6월 20일로부터 10년이 지날 때까지 취소하지 않았으므로 제척기간이 지나 취소권이 소멸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식증여의 의사표시가 취소할 수 있는 행위임을 알았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박정희 정권 내에는 취소권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취소권의 제척기간은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한 1979년 10월 26일부터 진행돼야 한다는 원고 측 주장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유족들은 과거사위원회 권고에 따라 2010년 6월 “정수장학회는 강제헌납받은 주식을 반환하고, 반환이 곤란하면 국가가 10억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김씨의 차남 영우(70)씨는 판결 직후 “당시 강압적으로 주식을 가져간 게 잘못됐다는 것은 과거사위원회와 국가정보원도 인정한 일인데 사법부가 과거 판결에 얽매여 기각했다”며 “대법원까지 가서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는 최고위원 회의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아바타인 정수장학회는 부산시민의 대변자인 부산일보의 입을 막았다”며 “부산의 민심을 듣고 싶다면 먼저 정수장학회를 사회에 환원하고 부산일보를 시민의 품에 돌려줘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