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 시대 초원을 누빈 유목민들의 삶과 애환… 김형수 장편소설 ‘조드-가난한 성자들1·2’
입력 2012-02-24 17:54
소설가 김형수(53·사진)가 칭기즈칸의 삶을 다룬 장편소설 ‘조드-가난한 성자들 1·2’(자음과모음)을 냈다. 조드는 유라시아 대륙의 건조 지대에서 가뭄과 추위가 겹쳐 일어나는 겨울 재앙이다.
‘조드’는 작가가 집필을 위해 10개월 동안 머물던 몽골에서 먼저 화제가 됐다. 지난 17일 몽골작가협회는 ‘조드’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고 몽골 일간지 ‘어더린 쇼당’은 오는 7월부터 ‘조드’를 번역 연재키로 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소설은 칭기즈칸에 대한 영웅서사가 아니다. 칭기즈칸 시대 유목민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 아시아 중세사의 복원이라는 측면에서 이전 칭기즈칸 소재의 소설과 차별화된다.
도입부는 몽골의 혹독한 겨울 풍경을 배경으로 늑대 떼가 말을 공격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과연, 늑대에 의해 복부가 찢겨진 말은 얇게 떠받치고 있던 뱃가죽이 대롱대롱 매달린 늑대 때문에 갈라지면서 거대한 밥통과 갖가지 내장을 눈발에 쏟았다. 관성 때문에 몇 발짝을 더 달리자 말의 뒷발굽이 자신의 내장을 밟아 터뜨렸고 창자가 휘감겼다.”(1권 56쪽)
말 등에 올라탄 채 늑대 사냥에 나선 청년 테무친(칭기즈칸)은 몽골족 개국신화에 나오는 어머니 알랑고아의 혈통을 이어받은 초원의 아들이었다. “알랑고아가 달빛과 동침하여 아들을 낳은 것은 아주 큰 사건이었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 이야기를 할 때는 누구나 속삭이듯 말했다. ‘쉿, 그건 푸른 하늘이 내려준 자식임을 뜻하는 거야.’ 족제비할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어머니가 깜짝 놀라고는 했다. 테무진이 왜 그러는지 물은 적이 있었다.”(1권 69쪽)
소설은 귀족 출신의 청년 테무친과 평민 출신 청년 자무카가 의형제를 맺고서 유목민들을 규합해 제국을 건설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나간다. 테무친, 자무카를 비롯해 소설에 등장하는 보오르추, 젤메, 모칼리, 수베테이, 주치 등 몽골 초원에 셀 수 없이 많은 말발굽을 찍은 전사들은 마치 ‘삼국지’나 ‘그리스 신화’ 속 인물처럼 살아 움직인다.
김형수는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하자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에 값할 인류사 상(像)을 얻기는 어렵다”며 “낡은 역사관을 대체할 그림이 있어야 새로운 역사관이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12세기, 13세기 지구사를 흔든 전무후무한 역사 의지는 ‘조드’에서 잉태됐다는 게 나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칭기즈칸이 대칸에 올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 후속작(3·4권)과 칭기즈칸 자서전 형식의 소설(5권)도 출간될 예정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