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근심 뒤섞인 중년의 고갯길… 장석남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입력 2012-02-24 17:55
장석남(47)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제목은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문학동네)이다. “저물면 아무도 없는 데로 가자/ 가도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라고 읊은 시 ‘저물녘’의 한 구절에서 가져왔다. 등단 25년째의 시인은 말했다. “뭐니 뭐니 해도 내 생에서 시경(詩境)으로 출타한 것이 인생의 큰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뭉뚱그려 제쳐놓는다. 하, 그게 스물다섯 해가 되었다니! 그간 건너온 징검돌들의 면모가 떠오르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시인의 말’)
시인은 생이 반으로 접히는 때를 지나고 있다. 이른바 중년. 사람도 시도 중년에 든 것이다. 시나브로 이번 시집은 한 사람이 가지고 태어난 시간의 절반이 빠져나가 뒤척이는 소리 같은 게 들려온다.
“복숭아는 분홍을 한 필/ 제 발등 둘레에 펼치었는데/ 마당은 지글거리며 끓는데/ 하산(下山)한 우리는 된 그늘을 두어 필씩 펼쳐놓고서/ 먹던 물 대접 뿌려서 마당귀 돌멩이들 웃겨놓고서/ 민둥산을 이루었네”(‘중년’ 전문)
‘된 그늘’은 지나온 삶의 궤적이 만들어놓은 흔적이자 나이의 무게가 스며 있는 영토다. ‘물 대접 뿌려서 마당귀 돌멩이들 웃겨놓고서’라는 구절은 중년에 이른 ‘우리’의 여유와 허망함을 동시에 드러낸다. 돌에 물을 뿌리면 감추어진 돌의 빛깔과 무늬가 절묘하게 드러나지 않는가. 이를 돌멩이를 웃겨놓았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돌이 웃는 게 아니라 그걸 지켜보는 시인이 웃는 것이지만.
청춘 시절에 대한 비유인 ‘지글거리며 끓는 마당’에 ‘된 그늘 두어 필씩’ 펼쳐놓는 중년의 그림자는 맵다. 중년이란 매운 나이인 것이다. 세월의 매운 맛을 어찌 달랠 수 있을까. 방책이 있기는 하단 말인가. “큰 눈이 오면,/ 발이 묶이면,/ 과부의 사랑(舍廊)에서처럼/ 편안함이/ 일편 근심이/ 뒤주 냄새처럼 안겨온다// 큰 눈이 오면,/ 눈이 모든 소란을 다 먹으면/ 설원과 고요를 밟고/ 와서 가지 않는 추억이 있다// 한 치씩 나앉은 사물들 모두/ 제 아버지가 온 듯/ 즐겁고, 희고/ 무겁다”(‘큰 눈’ 전문)
편안함과 근심이라는 이항대립의 역설을 끼니때마다 먹어야 하는 중년. 그래서 일용할 양식이 들어 있는 뒤주 속에는 편안함과 근심이 섞여 있다. 혼식의 미학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항대립의 시적 공법은 의도한 바 없이 다만 중년의 고개를 넘어가는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 나는 가난해야겠다/ 그러나 가난이 어디 있기나 한가/ 그저 황혼의 전봇대 그림자가 길고 길 뿐/ 사납던 이웃집 개도 오늘 하루는 얌전했을 뿐// (중략)// 오늘도 드물고 드문 가난을 모신,/ 때 까만 메밀껍질 베개의/ 서걱임/ 수(壽)와 복(福)의/ 서걱임”(‘가난을 모시고’ 부분)
때가 꼬질꼬질 낀 베개로 상징되는 ‘가난’과 거기에 수놓아진 수(壽)와 복(福)을 동시에 베고 잠을 청할 때의 서걱임은 메밀의 것도, 베개의 것도 아닌, 시인 자신의 것이다. 그 서걱임도 매운 소리일 테지만 시인은 이제 세월의 매운 맛에 몸을 맡긴 채 건너온 징검돌과 건너가야 할 징검돌을 굽어보고 있다. “내 유산으로는/ 징검다리 같은 것으로 하고 싶어/ 장마 큰물이 덮었다가 이내 지쳐서는 다시 내보여주는,/ 은근히 세운 무릎 상부같이 드러나는/ 검은 징검돌 같은 걸로 하고 싶어.”(‘나의 유산은’ 부분)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