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CJ 갈등] “수상한 차량이 골목에…” 미행사건 진실 공방
입력 2012-02-23 23:30
CJ그룹의 주장대로 삼성물산 직원이 이재현 CJ 회장을 미행했다면 최근 불거진 이 회장 아버지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7000억원대 재산 분할소송과 관련 있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맹희 전 회장은 지난 14일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차명으로 숨겨놓은 재산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독식했다면서 삼성생명 주식 824만주(4.12%)와 삼성전자 주식 등을 돌려 달라고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CJ 측은 “그룹은 몰랐던 일이다. 원만한 해결을 위해 중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삼성은 실질적 소송 대리인이 이재현 회장이라고 판단해 이 회장 주변을 감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맹희 전 회장이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과 이명희 신세계 회장, 이숙희 이순희씨 등 이병철 회장의 다른 자녀들도 아버지의 숨겨진 재산을 알게 돼 이들이 소송에 가세할 경우 삼성의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이 때문에 삼성 측이 이재현 회장이 누구를 만나는지 등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23일 “삼성이 더욱 주시해야 할 상황은 이건희 회장을 제외한 다른 형제들이 이재현 회장과 뜻을 함께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순환출자형에서 지난해 삼성카드가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정리하면서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의 수직구조로 바뀐 상태다. 삼성생명은 이건희 회장이 지분율 20.7%로 최대 주주고 삼성에버랜드가 19.34%로 2대 주주다. 이건희 회장이 패소해도 계열사 보유지분 등을 통해 지배구조를 유지하겠지만 다른 형제들이 장자에게 힘을 실어줄 경우 지배구조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삼성 측은 이번 사건이 불거지자 당혹해하면서도 공식 대응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삼성그룹과 삼성물산 측은 “이재현 회장 집 부근에는 이병철 선대 회장 부지 등과 호텔신라 재건축 부지 등 그룹 관련된 부동산이 많아 삼성물산 감사팀 직원이 호텔신라 재건축 부지에 대한 사업계획안이 타당한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 실사를 하던 중이었다”며 “CJ 측 주장대로 미행했다면 그렇게 허술하게 했겠느냐”고 말했다.
또 “CJ 측이 사건 당일 경찰조사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히지 않고 하루 지난 뒤 일부 언론에 슬쩍 흘려 터트리는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CJ 측이 소송전을 앞두고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프레임(틀)을 짜놓고 역공을 펴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CJ 측은 “삼성물산 직원이 오피러스에서 그랜저로 고급 렌터카를 바꾸면서까지 현장 실사 중이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CCTV를 보면 오피러스에 탑승한 삼성 측 직원이 이재현 회장 집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두 회사는 1995년 삼성에서 제일제당이 계열분리될 당시 서울 한남동 이건희 회장 집에서 바로 옆에 있는 이재현 회장 집 정문 쪽이 보이도록 CCTV를 설치, 출입자를 감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지난해에는 CJ가 뛰어든 대한통운 인수전에 삼성이 참여하면서 마찰을 빚기도 했다.
이명희 기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