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을 좋아했던 남자 설원에 묻히다…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

입력 2012-02-23 18:50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호시노 미치오/다반

1996년 8월 8일, 세계적인 야생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는 러시아 캄차카 반도 쿠릴 호수에서 야영을 하다가 불곰의 습격을 받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예측 불가능한 불의의 사고였지만 신화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그는 너무도 영웅다운 최후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그토록 곰을 좋아하던 남자가 결국 ‘곰의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연어가 회귀하는 캄차카에서.

1952년 일본 지바현 이치카와시에서 태어난 호시노는 19세 때 헌책방에서 우연히 알래스카 풍경을 담은 ‘조지 모블리’의 사진집을 보게 된다. 거기에 실린 에스키모 마을의 모습에 푹 빠져 촌장에게 방문을 허락해 달라는 편지를 쓴 그는 촌장으로부터 방문 환영 답신을 받고 그곳에서 에스키모 일가와 함께 여름 한철을 보낸 이후 오직 알래스카 풍광을 담기 위해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된다. 아예 알래스카 대학 야생동물 관리학부로 유학을 가서 알래스카 풍광과 동물을 꾸준히 사진에 담았다.

미국 카네기 자연사박물관에서 사진전을 열기도 했던 그는 사망 직전까지 일본의 한 잡지에 ‘숲과 빙하와 고래’란 제목의 르포를 연재하고 있었다. 17회로 예정됐던 연재는 그의 죽음으로 14회에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여행은 그가 남긴 취재 수첩을 통해 이어졌다.

“승객 3명. 드디어 시베리아다. 창문에서 베링 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하늘을 난 지 고작 한 시간 만에 시베리아 산이 보이다. 프로비데이야가 가까워질 때 잔설들이 쌓인 눈이 보인다. 근사한 풍경이었다.”(1996년 6월 30일)

“날씨는 여전히 을씨년스럽지만 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다. 트럭에 다시 짐을 싣고 툰드라의 덜컹대는 길을 지나 산을 넘다. 길은 종종 바닷속으로 잠긴다. 이런 루트가 어디 있나 싶다. 꽃이 아름다웠다. 이번 여행의 첫 촬영이었다. bird cliff(새가 둥지를 튼 절벽)에 올라 알을 꺼내려던 때는 식은 땀이 쫙 흘렀다.”(1996년 7월 2일)

사실 그의 마지막 여행을 이끈 것은 거대한 까마귀의 신화였다. 이 영험한 동물은 마지막 빙하기 시절, 지금의 베링해를 건너 알래스카로 이주한 몽골로이드 집단의 신화 속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그는 알래스카에서 시베리아로 이어지는 몽골로이드의 이동 경로를 거슬러 여행했다. 그 장구한 여정에서 접하게 될 여러 부족들의 흔적들을 두루 살펴, 몽골로이드를 하나로 엮는 공통된 뿌리를 찾아내겠다는 포부를 품었던 것이다.

큰 까마귀 신화를 쫓는 그를 곰이 질투한 것일까. 취재 수첩 마지막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흐리고 바람 붐. 곰은 한 마리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very skiddish(발치가 덜덜 떨린다). 우리를 보면 바로 도망가 버린다. 밤. 곰 한 마리가 베이스 캠프에 나타나 신경 쓰이게 하다. 전혀 도망가질 않는다.”(1996년 7월 27일)

그와 절친했던 친구 셀리아 헌터의 말처럼 인생이란 무언가를 계획하는 사이에 일어나는 다른 사건이듯, 그는 여정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갑작스레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의 마지막 여행을 기록한 이 책이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다. 수록된 사진들은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넘어 어떤 숭고미까지 느끼게 한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