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 “감독이 어린데 뭔가 한 방이 있다”…‘부러진 화살’ ‘범죄와의 전쟁’ 흥행코드 분석
입력 2012-02-23 21:09
화제의 영화 ‘부러진 화살’(정지영 감독)과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윤종빈 감독)가 나란히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부러진 화살’은 개봉 25일 만인 지난 11일 누적관객 300만1666명을, ‘범죄와의 전쟁’은 개봉 17일 만인 지난 18일 319만9655명을 각각 기록했다. 당분간 관객몰이를 계속할 것으로 보이는 두 영화의 흥행 요인은 무엇일까. 비교되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두 영화의 성공 이유와 관람 포인트 등을 분석해본다.
◇판사 VS 검사
두 영화는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부러진 화살’은 2007년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박홍우 판사 석궁 테러 사건을 다루었고, ‘범죄와의 전쟁’은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할 때 검찰 표적이 된 조직폭력배의 이야기를 그렸다.
재판 속기록을 근거로 제작된 ‘부러진 화살’에는 피고인 의견은 무시하고 안하무인인 판사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피해자 와이셔츠에 피가 묻어 있지 않고 석궁 테러에 쓰인 부러진 화살이 증거물로 제시되지 않아 문제가 있다는 변호인의 항의에 재판장은 만사 귀찮다는 표정이다. 방청객들이 야유를 보내면 짜증나는 목소리로 “조용히 하세요” “계속 소란을 피우면 퇴정시키겠습니다”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영화 속 판사들의 행태는 사법부 불신으로 이어지며 사회적 논란이 됐다.
반면 ‘범죄와의 전쟁’에서는 검사가 피의자를 함부로 대하는 장면 등을 통해 공권력의 과잉을 보여준다. 조직폭력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가 취조실에서 “내가 깡패라면 넌 그냥 깡패야”라며 피의자 인격을 무시하고, 피의자가 검사의 어깨를 만지자 “검사 몸에 어디 손을 대느냐”면서 발로 마구 찬다. 금두꺼비 뇌물에 사건을 무마해주는 검찰 고위 간부는 정의의 파수꾼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안성기 VS 최민식
‘부러진 화살’의 주인공 안성기는 타협이라고는 모르는 고집불통인 김 전 교수를 거의 완벽하게 연기했다. 증거가 없기 때문에 무죄라는 자신의 주장이 재판부에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라고 거칠게 항의하는 대목에서는 분하고 억울한 심정이 관객들에게 전해지는 느낌이다. 감옥에서 법전을 파고드는 진지함과 다른 죄수로부터 성폭행 당하는 리얼함을 능수능란하게 해냈다.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민식이 연기한 최익현은 비리 세관 공무원 출신으로 틈만 나면 “경주 최씨 충열공파 35대손”을 외친다. 그러면서 부산 최고 조폭에 몸을 담그고 로비를 일삼는다. 최민식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배신쯤이야 식은 죽 먹기로 하면서도 상황이 불리해지면 싹싹 빌며 빌붙는 캐릭터를 실감나게 연기했다. 배가 불룩 나온 중년 아저씨로 보이기 위해 그는 10㎏ 이상 체중을 늘렸다.
안성기는 최근 300만 돌파 기념 호프데이에서 “옛 전우와 같은 정지영 감독을 믿고 출연했는데 이렇게 잘 될 줄 몰랐다”며 웃었다. ‘하얀 전쟁’ 이후 20년 만에 호흡을 맞춘 감독과 배우의 노련함이 영화에 힘을 불어넣었다. 윤종빈 감독의 영화에 처음 출연한 최민식은 “감독이 나이는 어리지만 뭔가 한 방이 있다”고 했다. 젊은 감독의 패기와 연기파 배우의 투혼이 영화를 빛냈다.
◇도가니 VS 친구
‘부러진 화살’은 잊혀진 사건을 영화화해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지난해 상영된 ‘도가니’와 맥을 같이 한다. 광주 장애인 학교의 성폭행을 다룬 ‘도가니’와 소재는 다르지만 일방적이고 불합리한 재판 과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 사법부에 대한 국민감정에 불을 질렀다는 점은 비슷하다. 하지만 사회에 끼친 ‘도가니’ 효과가 폭발적이었다면 ‘부러진 화살’ 파워는 다소 못 미친다는 평가다.
‘범죄와의 전쟁’은 198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조폭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유오성 장동건 주연의 ‘친구’(2001)와 닮았다. 차이점은 ‘친구’가 사랑과 우정을 품고 사는 고교생 친구들이 훗날 음모와 배신으로 파멸하는 과정을 다루었다면, ‘범죄와의 전쟁’은 술수와 폭력으로 얼룩진 조폭들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렸다. ‘친구’에는 낭만이 있지만 ‘범죄와의 전쟁’은 좀 삭막하다.
‘부러진 화살’은 ‘도가니’가 기록한 469만명의 관객을 넘어설 수 있을까. 22일 현재 340여만명으로 이번 주 박스오피스 3위에서 6위로 떨어진 점을 감안하면 어려울 수도 있다. ‘범죄와의 전쟁’은 360여만명으로 ‘친구’가 세운 818만명의 절반에 못 미친다. 개봉 후 2주째 연속 1위를 차지하다 송강호 이나영 주연의 ‘하울링’에 밀려나 ‘친구’ 기록을 넘어서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