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암에 생존가능 10%서 언어장애인 교수로…하나님 의지해 꿈을 이뤄내

입력 2012-02-23 20:10


[미션라이프] “장애인 모두가 희망을 갖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꿈꿔 봅니다.”

언어장애 4급 이상윤(38·사진)씨는 다음달 1일부터 국립 부경대학교 공간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로 근무한다. 언어장애인이 교수에 임용되는 경우는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드물다.

이씨는 23일 본보와의 전화 및 이메일 인터뷰에서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에 섰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이룬 것에 안주하지 않고 더 열심히 노력 하겠다”며 스스로에 대한 다짐도 했다.

그의 임용은 언어장애 학생들에게 큰 희망을 주고 있다. 그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 “언어장애 후배들이 훌륭한 인재로 성장해 주류 사회에서 등용될 수 있도록 선배로서 도와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씨가 언어장애인이 된 것은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를 졸업한 직후인 2006년. 왼쪽 눈 아래와 입천장 사이(상악동 부분)에 악성 종양이 발견됐다. 소위 ‘상악동 암’이라는 희귀 질환이었다. 생존 확률이 10% 미만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항암치료를 시작한지 수개월, 그는 목숨은 구했지만 얼굴 왼쪽 광대뼈 대부분을 잃었다. 이 때문에 이씨는 보철 없이는 대화가 불가능하다. 입안 내부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보철을 1년에 한번 정도 바꿔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입안이 헐고 피가 철철 흐른다.

이씨는 투병 중에도 학문에 힘써 부산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과학기술정책(STS) 박사과정까지 수료했다. 조선과 해양과학 기술을 정보기술(IT)과 융합하고 이를 정책화하는 연구를 밤낮으로 계속했다. ‘대통령 만들기: 게임이론과 죄수의 딜레마’ ‘기술, 배, 정치:기술 배 정치는 세계 패권을 어떻게 바꿨는가?’ ‘과학기술과 국제정치: 한국의 글로벌 해양 전략’ 등의 책도 출간했다.

“석·박사 과정에서 3시간 이상 강의할 때는 입안에서 피가 흘러내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죽을 각오로 참고 말을 계속하니까 기적처럼 피가 멈추더군요. 지금은 강의하는 데 지장이 없습니다.”

신부산교회와 수영로교회에서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로 힘을 얻었다는 이씨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북한주민에게 필요한 먹을거리와 돈을 벌어다 줄 공장을 지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전공 분야를 활용, 북한 지역에 남한의 조선산업 단지를 최신의 기술혁신방법인 산업클러스터 특화 방식으로 이식시킬 궁리를 하고 있다. 그는 치열한 생존경쟁에 밀려 앞날이 불투명하고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청년들에게 한 마디 조언했다. “꿈은 이루어집니다.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꿈과 희망을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