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지대’ 북극이 녹고 있다 위기인가 기회인가… ‘2050 미래쇼크’

입력 2012-02-23 18:20


2050 미래쇼크/로렌스 C. 스미스/동아시아

“우리 집 앞의 잔디가 매일 1.7m의 속도로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또는 나의 생일이 매년 열 시간씩 앞당겨진다고 생각해보라. 현재 지구의 생물 변화는 이렇게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생물은 이동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창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19쪽)

세계적으로 동식물과 어류, 곤충류가 점점 더 높은 위도와 고도의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거품벌레에서 스페인의 나비와 뉴질랜드의 나무에 이르기까지 이런 경향은 두루 목격된다. 식물과 동물이 평균 10년마다 자신의 영역을 극지방 쪽으로 6㎞, 고도는 6m씩 높은 쪽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한 사람은 지리학자이자 지구과학자인 미국 UCLA의 로렌스 C. 스미스 교수다. 그는 온난화라는 지구적 변화 앞에 동식물들이 ‘지구의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앞으로 40년 뒤인 2050년대엔 이 ‘새로운 북부’가 오늘날보다 사람 활동이 늘고 전략적 가치와 경제적 중요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예견을 내놓고 있다. 그가 정의하는 ‘새로운 북부’란 미국 캐나다 아이슬란드 그린란드(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북위 45도 이상의 대륙과 대양을 가리킨다.

그는 2년여에 걸쳐 지구 북부 곳곳을 돌아다니며 현장 취재한 경험을 토대로 북극 지역의 발전 가능성을 분야별로 분석했다. 그 결과 2050년에 세계 인구가 지금에 비해 절반가량 늘어나는 동시에 북극해 천연가스 등이 세계 각지로 이송되면서 북극권이 지구의 에너지원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숯, 분뇨, 풀 등 화학적 에너지로 사용되는 생물을 뜻하는 ‘바이오매스’가 북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북극의 농업 생산도 크게 늘 것으로 진단했다.

“1990년대까지 북부 지역의 식물이 더 푸르러졌음이 위성으로 관찰되었다. 나무들은 더 높이 자랐고 황량했던 툰트라에 관목이 싹트기 시작했다. 생태계 모형은 기온이 상승하고 성장 계절이 길어지면서 식물의 성장이 계속 활발해질 것으로 추산한다. 낙관적 시나리오에 따르면 북극권의 순일차생산성(식물 바이오매스 전체를 나타내는 지표)은 2080년대까지 거의 두 배가 된다고 한다.”(202쪽)

이에 따라 북극권에도 대도시가 형성될 수 있고 겨울도로를 통하든 해협을 통하든 운송수단과 횟수가 증가할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이 지역의 투자 가치는 점점 더 상승한다는 것이다.

그가 그려낸 2050년 지구촌에 대한 밑그림을 보면 기후변화로 말미암은 지각의 변동뿐만 아니라 그 땅 위에서 살아가는 인간 사회의 변동 또한 충격적으로 묘사된다. 미국은 여전히 강국이지만 오늘날처럼 절대적이지 않으며 브릭스(브라질 인도 러시아 중국) 나라들이 부상하면서 세계의 경제 지형이 바뀐다는 것이다. 현재 인구 1000만이 사는 대도시는 일본 도쿄와 미국 뉴욕이 대표적이지만 2025년이 되면 인도 뭄바이와 델리, 방글라데시 다카, 브라질 상파울루, 중국 상하이와 광저우 등이 거대도시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지정학적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강대국들이 등장하면서 새롭게 재편된 복잡한 연합 구도가 형성되는데, 강대국이 많아진다는 것은 무역과 해외 투자, 천연자원을 둘러싼 전략적 경쟁이 그만큼 치열해진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 지도자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미래의 정치 지도자들이 전쟁이 아닌 협약을 선택하게 되리라고 전망한다. 그 한 예로 북극권에서 지난 20년간 꾸준히 이어져온 협력의 흐름에 주목한다. 그리고 유엔이 제정한 협약이 세계 각국에 해양 영유권을 정하는 규범으로 빠르게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강조한다.

북극권 국가들이 협력하게 된 시발점은 1987년 10월 1일, 당시 소련 지도자였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무르만스크에서 연설한 이후이다. 이때로부터 4년 뒤 소년이 해체되고 나서 알래스카와 러시아 원주민 가족들은 베링 해협을 건너 재회하게 됐고, 시베리아인들은 자유롭게 해외여행도 할 수 있게 됐다. 그 여파로 북극해 전역에 새로운 협력이 싹트고 여러 단체들이 생겨났다.

원주민들, 특히 이누이트족은 국경을 넘어 정치적으로 연대하기 시작했다. 1991년에는 북극권 8개국이 이 지역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하자는 데 공동 서명했으며 결국 북극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이는 북극권 8개국뿐만 아니라 참관국과 이익 단체들도 참여할 수 있는 정부 간 조직이다. 이 외에도 민간 차원의 국제 네트워크가 효율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물론 저자와 달리 낙관적이지 않은 전망도 있다. 캐나다 캘거리대학의 정치 과학자 롭 휴퍼트는 전 세계가 북극을 화석 연료 확보 차원에서 ‘새로운 중동’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북극도 중동처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격전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저자가 역설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 기회를 소수가 독점하는 세상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협약이든 동맹이든 함께 쟁취하고 누리는 세상을 만들 것인가. 그는 이렇게 강조한다.

“내가 볼 때 맬서스와 마르크스의 논쟁, 얼리히와 사이먼의 논쟁은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 세계 인구가 얼마이고 석유 매장량이 얼마인지, 가용 경작지와 수자원이 얼마나 남았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북극곰과 북극대구가 멸종해도 우리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주거지, 식량, 물 문제를 해결하며 9000억명이 복작복작 살아갈 수도 있고, 아니면 더 넓은 지구에서 많은 생물과 함께 9억명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도 있다. 따라서 내게 더 중요한 질문은 용량이 아니라 욕망의 문제다. 우리는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377쪽)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