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 사모의 땅끝 일기] 민철이의 보물상자

입력 2012-02-22 20:35


‘껌, 몽당연필, 쓰다만 지우개, 리본핀, 낡은 포켓몬스터카드, 동전, 부서진 장난감 자동차, 인형….’

이 물건들은 봄맞이 대청소 중에 우연히 발견된 민철이의 보물상자에서 나온 민철이의 보물(?)들입니다. 우리 민철이는 올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는데 우리집에 와서 함께 생활한 지 7개월 된 아주 사랑스런 아들입니다.

소소한 것들 왜 숨겨뒀을까

부산에서 아빠와 함께 살다가 사정이 생겨 아빠와 헤어져 우리와 살게 되었습니다. 어린마음에 상처도 많았을 텐데 정말 잘 자라주어 얼마나 감사한 지 모릅니다. 그런데 민철이의 보물상자가 거실바닥에 떨어져 우리 가족들에게 공개되면서 잃어버렸던 누나들의 리본핀, 형들의 샤프와 장난감총, 세 살 아래 동생 은총이의 인형까지…. 저희 모두는 할 말을 잃고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습니다.

잠시 후에 저희 남편의 도움으로 거실의 보물들은 정리되고 민철이와 민철이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보물(?)들까지 저희 부부 앞에 얌전히 앉아있게 되었습니다. 잠깐, 아주 잠깐이었지만 저는 머릿속이 너무나 혼란스러웠습니다. 무엇 때문에 민철이가 형들과 누나들의 필기도구부터 동생들의 소소한 장난감까지 가져다가 숨겨 두었는지 도저히 민철이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혹여 이런 일들이 나쁜 습관이 되면 어쩌나 하는 염려와 우리가족에게서는 채울 수 없는 텅 빈 마음이 있어서 그런 건지, 그것도 아니면 엄마인 제 사랑이 부족한 것인지 별의별 생각에 제 마음은 편치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저희 부부앞에 앉은 민철이는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아주 순수한 눈빛으로 저희를 바라보았습니다. 순간 얼마나 웃음이 나오는지 저희 부부는 서로 바라보며 한동안 웃음을 멈추질 못했습니다.

그랬습니다. 민철이 생각에는 누나와 형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이, 일곱 살 어린 민철이의 눈에는 정말 귀한 보물로 보였나 봅니다. 그래서 소중하게 모으고 또 우리아이들은 낡은 물건들이라 귀중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찾지도 않아 우리 민철이에게 보물들만 더 많이 만들어주게 된 것입니다.

민철이가 가장 좋아하는 따뜻한 코코아를 셋이서 함께 나누어 마시면서 민철이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이 못난 엄마의 사랑이, 아빠의 사랑이 많이 부족해서 보물상자에 보물이 많아진 것 같아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우리 막내 에스더를 안아주느라고 초등학교 입학하는 민철이가 너무 크게 느껴져, 안아주기보다는 책읽기와 글쓰기에만 신경 쓴 제 자신이 보여 더 많이 미안해 졌습니다.

잡동사니 대신 사랑을 채워줄게…

이런 저희 부부의 속을 안다는 듯이 제 품에 안긴 민철이가 한마디 합니다.

“엄마 누나들이랑 형들 거 가져와서 미안해요. 앞으로는 물어보고 가져갈게요.”

오늘도 참 행복한 날입니다. 너무나 사랑스런 아들을 품에 안고 웃을 수 있어서 더 많이 행복한 날입니다. 이렇게 우리 민철이가 행복하게 잘 커주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민철이의 보물상자에 보물이 더 늘어나지 않도록 많이많이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이야기 해 주며 살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민철아! 엄마는 우리 민철이 정말 많이많이 사랑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