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금연 열풍의 끝
입력 2012-02-22 19:39
이제는 전설이 된 배우 겸 영화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무명이던 그를 일약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영화가 스파게티 웨스턴의 효시 ‘황야의 무법자’(1964)다. 이 영화에서 그가 맡은 ‘이름 없는 사나이’의 트레이드마크는 거적 비슷한 판초와 덥수룩한 수염, 잔뜩 찌푸린 입술에 물려있던 시가 꽁초였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돼 큰 인기를 끌었던 ‘형사 콜롬보’. 어수룩한 생김새와 달리 날카로운 관찰력과 추리력으로 주로 상류층 살인범들을 궁지에 몰아넣어 세계적으로 시청자의 갈채를 받은 ‘미드’다. 명우 피터 포크가 연기한 콜롬보의 트레이드마크 역시 ‘황야의 무법자’와 비슷하다. 추레한 입성, 곧 구겨진 레인코트와 한시도 입과 손에서 떼놓지 않던 시가.
만일 담배라는 소품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선인도 악인도 아닌 떠돌이 총잡이와 날카로운 풍모도, 근육질도 아닌 형사라는 비정통파 서부극과 추리극의 주인공 이미지를 제대로 그릴 수 있었을까? 그러나 이 영화들은 요즘 같았으면 만들어질 수 없었다. 담배 등장 장면을 금기시하는 금연 정책 혹은 운동 탓이다.
바야흐로 금연 열풍이 거세다. 개인의 자유를 무엇보다 중시하고 타인에게 관대한 똘레랑스로 이름 높은 프랑스, 세상천지가 담뱃재와 꽁초를 버려도 되는 재떨이라는 뜻의 ‘프렌치 애시트레이(French ashtray)’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던 흡연자 천국 프랑스마저 금연 열풍 앞에 무릎을 꿇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다음달 1일부터 서울시내 모든 중앙차로 버스정류소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과태료 10만원을 물게 된다. 내년에는 가로변 버스정류소도 금연구역이 된다. 또 전국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곳으로 꼽히는 서울 강남대로 지하철 2호선 강남역∼9호선 신논현역 보행로 역시 금연구역이 된다.
다만 강남대로의 한쪽은 서초구, 다른쪽은 강남구 관할이다 보니 도로 양편의 시행시기나 과태료가 달라지는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금연구역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고 보면 머잖아 애연가, 끽연가라는 말이 사어(死語)가 될지도 모른다.
물론 간접흡연을 포함한 흡연의 폐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만큼 금연 열풍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하지만 캠페인을 벌이면서 흡연자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돈을 빼앗아 가느니 아예 담배농사를 불법화하는 것은 어떨까. 양귀비꽃이나 대마를 기르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그럼 흡연자들도 더 쉽게 담배를 포기하지 않을까.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