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임미정] 예술가와 과학자의 차이
입력 2012-02-22 18:24
음악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사회단체를 맡아 일하다 보니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평소 학교나 음악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는 의사소통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비슷한 단어, 비슷한 사고의 틀 안에서 이야기하면 되니까. 그러나 예술 활동을 다양한 영역에 접목하다 보면 의사소통이 그리 쉽지 않다. 그러한 영역에 음악활동을 끼워 넣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울까 생각할 수 있지만, 사고의 내용과 틀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고도의 의사소통 기술이 필요하다.
예술가와 사회과학자들에 있어 사고와 표현방식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낀 것은 작년에 ‘북한정책포럼’이 마련한 중국 일정에 참석했을 때다. 이 포럼은 동북아 정세 등을 정치·경제면에서 살펴보는 모임인데, 나는 음악을 통한 남북 화합에 관심이 많기에 참석하게 되었다. 며칠간 동북아의 미래 등에 대한 발표를 들으면서 사회과학적인 사고(언어)의 틀에서 지냈다.
참석자들과 대화할 때는 그런 사고의 틀 안에서 소통해야 했는데, 나흘을 그렇게 지내고 나니, 마지막 날 즈음에는 단어 선택과 논리 구조 등이 그분들과 동일화되어 이질감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문화부문의 대화를 할 때도 사회과학적 틀로 이야기하게 되고, 포럼 후 귀국을 할 때는 내 머릿속의 사고 구조가 나도 모르게 그들 논리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일정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노엘이라는 외국인 피아니스트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그가 전화를 건 연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15분 정도 설명하는 동안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캐나다에 계신 그의 선생님, 학생들의 음악캠프, 장학금 혜택, 선생님과 참여학생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지에 대한 그의 경험 등이 장황하게 나열되었다.
그의 설명을 듣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 영화 한 편에 해당하는 그림이 그려진 후 마침내 그가 결론을 내렸다. 요컨대 “장학금을 주는 좋은 음악캠프가 있으니 학생을 추천하라”였다. 순간 이 간단한 이야기에 무슨 설명이 이리 길담? 하고 허탈해하다가 곰곰 생각해 보니 그게 음악가들의 소통 방식이었던 것이다. 간단하게 정리된 결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내면의 심리와 관계 등의 설명에 더 집중한 것이다. 나도 평소에 그랬으나, 사회과학포럼 직후라 그 차이가 선명하게 들어왔던 모양이다.
이 시대에는 사회과학, 공학, 인문학, 예술 등 많은 갈래의 학문이 있고 우리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선 이 모든 학문의 전문성이 발달해야 한다. 하지만 전문성 못지않게 융합의 기술도 필요하다. 또 융합을 위해선 사고의 틀과 차이를 이해해야만 한다. 사고의 차이에 대한 이해와 융합의 기술은 학문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등 나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해와 포용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임미정 한세대 교수·하나를위한음악재단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