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록 댄싱퀸’ 밤하늘을 홀리다… 캐나다 화이트호스의 ‘오로라 여행’

입력 2012-02-22 22:23


캄캄한 밤하늘에 모래알보다 많은 별들이 총총하다. 긴 꼬리를 그리며 낙화하는 유성들의 우주쇼가 막을 내릴 무렵 지평선 너머 밤하늘에서 홀연히 초록색 띠가 등장한다. ‘천상의 커튼’ 혹은 ‘하늘의 꽃’으로 불리는 오로라다. 초록물감을 풀어놓은 듯 밤하늘을 채색한 오로라가 천상의 발레리나로 변신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여명의 여신’ 아우로라의 춤이 이처럼 황홀하고 현란할까. 망사처럼 투명한 그녀의 초록색 치맛자락이 펄럭일 때마다 보석처럼 영롱한 캐나다의 밤하늘이 언뜻언뜻 속살을 드러낸다.

북위 60°43′00″. 캐나다 서북부 유콘 준주의 주도(州都) 화이트호스(Whitehorse)는 오로라를 보러 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오로라가 나타나는 계절은 겨울철인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특히 2011년부터 2013년까지는 오로라 활동이 가장 활발한 태양 활동 극대기로 오로라 관측의 최대 적기로 꼽힌다.

표고 200∼300m 높이의 설산에 둘러싸인 화이트호스는 공기가 맑아 오로라 못지않게 일출과 일몰도 환상적이다. 해뜨기 직전 삼나무 가지에 걸린 연분홍 조각구름이 오렌지색으로 물드는 장면은 한 폭의 수채화. 해가 지면서 연출하는 유콘 강의 황금색 저녁노을은 금광의 도시를 상징한다.

오로라 관측은 밤 10시 이후 캄캄한 밤에 이루어진다. 화이트호스에서 알래스카 하이웨이를 타고 북쪽으로 30분쯤 달려 늑대 발자국이 선명한 삼나무 숲으로 들어가면 오로라산장이 나온다. 처음 만난 이국인들끼리 모닥불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면 북쪽 하늘에서 홀연히 나타나는 오로라를 만나게 된다.

화이트호스의 오로라 관측 포인트는 20여 곳. 관광객들은 영하 10∼30도의 추위를 피해 산장이나 ‘티피’로 불리는 원뿔형의 인디언 천막에서 따끈한 커피로 몸을 녹이며 오로라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숲을 진동하는 늑대의 울음소리조차 낭만적으로 들리는 것은 오로라에 대한 환상 때문이리라.

오로라는 태양에서 방출된 대전입자(플라스마)의 일부가 지구 자기장에 이끌려 대기로 진입하면서 공기분자와 반응해 빛을 내는 현상. 17세기 프랑스 과학자 피에르 가센디가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여명의 여신’ 아우로라(그리스 신화의 에오스)의 이름을 따서 오로라로 명명했다.

극광으로도 불리는 오로라는 자북점을 중심으로 1600㎞ 안쪽 오로라존에서 원의 띠를 형성하며 발광한다. 지도상의 북극점에서 남쪽으로 1200㎞ 떨어진 자북점이 캐나다 쪽으로 치우쳐 있어 유럽이나 아시아보다 캐나다에서 오로라가 더 잘 보인다. 화이트호스를 비롯해 노스웨스트 준주의 옐로나이프, 앨버타 주의 포트맥머리가 캐나다의 3대 오로라 관측 장소로 손꼽히는 이유다.

오로라는 매일 정해진 시각에 나타나는 천문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통계학적으로 11월부터 4월까지 3일 이상 머무르면 오로라를 만날 확률이 95% 이상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오로라 여행상품은 사흘 연속 밤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오로라를 관측하도록 꾸며져 있다.

모닥불의 불꽃이 스러지고 별을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단 삼나무의 윤곽이 희미해질 무렵. 오로라는 북두칠성을 비롯해 화이트호스의 밤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별들 사이로 나타난다. 오로라는 밝기와 활동성을 기준으로 레벨 1∼10까지 10단계로 구분한다. 일반적으로 레벨 2에서 레벨 6의 오로라를 관측하게 된다. 하지만 운이 좋으면 레벨 7이상의 오로라를 초저녁의 암청색 하늘을 배경으로 관측할 수도 있다.

오로라의 색깔은 초록색과 황록색이 보편적이지만 때로는 적색, 황색, 청색, 보라색, 흰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주로 저위도 지방에서는 적색, 고위도 지방에서는 초록색이 많이 관찰된다. 화이트호스에서 볼 수 있는 오로라는 대부분 초록색이지만 드물게 청색이나 적색도 나타난다.

행운은 소리 없이 찾아온다. 이틀 연속 얼어붙은 숲에서 밤을 꼬박 새다시피 하고도 오로라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마지막 날인 지난 19일(현지시간) 초저녁 산책길에 유콘 강변에서 하늘을 보다 우연히 오로라와 맞닥뜨렸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암청색 하늘을 배경으로 한 레벨 7의 오로라를….

하늘을 가로지르는 초록색 띠가 고무줄처럼 늘어나더니 오선지의 음표처럼 춤을 추기 시작한다. 빛줄기는 순식간에 천상의 커튼으로 변신해 하늘을 열고 닫는다.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던 오로라가 삼나무 숲과 맞닿은 하늘에서 회오리를 연출하더니 흩어져 지상으로 쏟아지기도 한다.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군무를 선보이듯 오로라가 뫼비우스의 띠를 만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피아니스트로 변신한다. 안단테에서 프레스토로, 프레스토에서 안단테로 경쾌한 리듬을 타는 오로라가 밤하늘을 무대로 ‘백조의 호수’ 발레리나처럼 우아한 춤을 선보인다. 이어 직녀가 짠 초록색 오로라가 오작교를 건너 은하수 너머로 홀연히 사라진다.

화이트호스(캐나다)=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