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레 33년 철권통치 막 내리다… 예멘 대선 실시, 새 대통령에 하디 유력
입력 2012-02-21 23:57
1년여간 민주화 시위를 벌여온 예멘에서 21일(현지시간)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실시됐다.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33년 철권통치가 막을 내린 것이다. 이로써 예멘은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에 이어 ‘아랍의 봄’ 혁명에 독재자가 물러난 네 번째 나라가 됐다. 그러나 이날 반대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4명이 숨지는 유혈 사태가 벌어지는 등 향후 사회통합문제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새 대통령 선출보다 살레 퇴진에 의미=살레는 지난해 11월 걸프협력이사회(GCC)의 중재로 야권과 권력이양안에 합의하면서 퇴진 조건으로 새 대통령의 선출을 내세웠다. 후보는 압드라부 만수리 하디(66) 부통령 한 명뿐이다. 그는 1994년 부통령이 된 뒤 18년간 살레의 그림자로 지내왔다. 대통령의 얼굴만 바뀔 뿐 살레의 영향력은 여전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하디가 단독 후보로 나온 만큼 대선은 사실상 신임투표 성격이 강하다. BBC에 따르면 예멘에는 선거가 성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투표율이란 것이 없다. 그동안 선거를 통한 평화로운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않아 민주적인 선거 제도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행 선거법상 단 한 명만 찬성해도 후보자가 선출된다. 따라서 BBC는 이번 선거는 새 지도자를 뽑았다는 것보다는 살레가 퇴진했음을 확실히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미국, 예멘 군사력 강화 지원=하디가 예멘의 새 대통령으로 확정되면 2년 동안 과도 정부를 이끌게 된다. 그의 앞에는 알카에다, 분열된 반군세력,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어린이들, 심각한 가뭄 등 풀어야 할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또 개헌과 예멘군 재편, 소요 사태 장기화로 붕괴한 국가 재건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이날 보도했다.
한 예멘의 고위관리는 “하디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면 미국이 군사적인 재건 사업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존 브레넌 백악관 대테러 보좌관은 최근 예멘을 방문해 “중동지역에서 예멘이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룬 모델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통합 성공 못하면 내전 가능성도=남부 분리주의 세력은 자치나 독립을 요구하면서 이날 대선 참여를 거부했다. 남부 일부 지역은 알카에다 연계 무장단체가 여전히 건재해 중앙정부의 통제가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하디 당선 후 통합에 성공하지 못하면 내전에 휩싸일 가능성도 있다. 벌써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조짐이 이날 선거 당일 벌어졌다. 남부 아덴시 다르사드 선거관리본부 인근에서 남부 분리주의 무장세력과 경찰의 총격전으로 10세 어린이가 숨졌다. 아덴시 만수라 지역과 남동부 하드라마우트 주의 주도 무칼라시에서도 3명이 숨졌다.
살레의 아들과 조카가 각각 최정예 공화국수비대와 중앙보안군 사령관으로 건재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대선 직후 귀국할 것으로 알려진 살레의 행보에 따라 혼란은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