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김용우] 정치의 도구가 된 역사
입력 2012-02-21 18:19
터키와 프랑스 사이의 역사 전쟁이 한창이다. 최근 프랑스 상원을 통과한 법안 때문이다. 이 법안은 오스만제국이 저지른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제노사이드)’을 부정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혹은 4만5000유로의 벌금형에 처할 것임을 명시했다. 터키 여론은 들끓었고 총리가 나서 이후 벌어질 모든 사태의 책임은 프랑스에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토 동맹국이자 무역 파트너 간의 심각한 외교 갈등이 발생한 것이다.
무엇이 터키를 화나게 만든 것일까?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제국 정부는 제국 내에 살고 있던 기독교도 아르메니아인을 향해 대대적인 탄압과 학살을 자행했다. 그러나 역사상 대부분의 참담한 폭력처럼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둘러싼 논란 역시 끊이지 않는다.
먼저 희생자 숫자가 문제다. 아르메니아는 150만명, 터키는 50만명, 역사가들은 대략 80만명 등으로, 희생자 숫자부터 엄청난 차이가 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건의 성격이다. 아르메니아는 물론이고 대다수 역사가들에게 그것은 오스만제국의 조직적 기획의 결과인 ‘집단학살’이다. 유엔은 일찍부터 집단학살을 국제 범죄로 규정한 바 있다. 터키의 공식 입장은 정반대다. 제1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 벌어진 ‘우연한’ 사건일 뿐이라는 견해다.
집단학살 인정하고 사죄해야
아르메니아인들의 비극이 집단학살이라면 터키는 오스만제국의 국제 범죄를 계승한 국가가 된다. 이렇게 프랑스 법안은 터키의 국가 정체성이라는 민감한 부분에 닿아 있다. 터키로부터 맹렬한 반격이 시작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종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법안, 다가올 대선에서 50만명가량의 아르메니아계 프랑스인들의 표심을 얻으려는 술수, 이슬람교도에 대한 공격, 유럽연합(EU)의 회원이 되려는 터키의 꿈을 좌절시키려는 시도, 자신의 역사적 과오는 제쳐 둔 채 다른 나라의 역사에 개입한 위선이라는 비난이 프랑스를 향해 쏟아졌다.
터키의 비난이 과장되기는 해도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선을 몇 개월 앞둔 민감한 시점에, 그것도 여당 의원이 입안한 이 법안이 상원을 통과한 이유가 석연치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프랑스 정부 역시 식민지에서 저질렀던 학살과 폭력의 어두운 과거를 제대로 반성하지 못한다는 비판 때문이다. 알제리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식민지에서 프랑스가 ‘긍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교과과정에 반영하도록 한 2005년의 법안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이 법안은 다행스럽게도 1년 만에 폐기됐지만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견뎌야 했던 북아프리카인들에게는 큰 상처로 남았다.
1994년 100만명가량의 목숨을 앗아간 르완다의 참사는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과 더불어 유엔이 인정한 대표적인 집단학살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을 부인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한 프랑스 의회가 여전히 르완다의 집단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의외다. 아마도 프랑스가 르완다의 비극에 깊이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정부도 특정 역사관 강권 말기를
역사를 둘러싼 대립은 제각기 정치적 이해관계에 맞는 역사관을 강요할 때 발생한다. 터키와 프랑스 사이의 역사 전쟁 역시 예외는 아니다. 역사가들에게서 펜을 빼앗아 정치가 역사를 쓰려고 할 때 갈등과 대립은 불가피하다. 사실은 뒤틀리고 해석은 자의적이 되어 대화 여지가 사라진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한·중·일의 기나긴 갈등이 그러하고 지난해 우리 정부 스스로 역사 서술에 깊이 개입해 특정한 역사관을 강권했던 일이 그러하다. 역사가 정치의 도구가 된 예들인 것이다.
김용우(호모미그란스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