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바가지 요금

입력 2012-02-20 18:21

대기업 출신 A씨는 프랑스 파리의 한 주점에서 낭패를 당했다. 17년 전쯤의 일이라고 한다. 주점 입구에 있던 삐끼가 “1인당 미화 100달러의 입장료를 내면 맥주와 음료수를 실컷 마실 수 있다”고 제안했다. A씨는 삐끼와 흥정을 벌여 1인당 20달러로 후려쳤다. 많이 깎았다고 우쭐하기까지 했다.

A씨와 동료는 어두컴컴한 주점의 구석 자리에 가서 앉았다. 다른 손님은 없었다. 맥주 2병을 마시는데 여자 2명이 합석을 종용했다. 동료 B씨는 손사래를 쳤지만 A씨는 대화만 하면 괜찮다며 합석을 허용했다. 여자들은 앉자마자 주스 2잔을 시켜 벌컥벌컥 마셨다. 양해를 구하고는 주스 2잔을 추가로 주문했다. A씨와 B씨도 맥주 2병을 더 시켰다.

찜찜했던 B씨는 담뱃불을 붙이는 척하며 라이터를 켜 여자들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족히 50세는 넘어 보였다. 일이 잘못됐다고 판단한 A씨와 B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람보 같은 어깨가 다가왔다. 맥주 1병에 250달러, 주스 1잔에 350달러로 계산해 2400달러를 청구했다. 입구에서 돈을 냈다고 항의해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어깨에게 자리를 비켜 달라고 부탁하고는 여권을 신발 안쪽 바닥에 깔고, 돈을 양말 속에 숨겼다. 둘이 합쳐 500달러만 지갑에 남겨 놓고 어깨를 불렀다. 지갑을 탈탈 터는 시늉을 하며 500달러를 주고는 어렵사리 주점을 빠져나왔다.

기자는 1991년 1월 걸프전을 취재하러 갔다가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바가지요금을 낸 적이 있다. 요르단 국제공항에서 수도 암만으로 가는 길이었다. 택시 기사는 150달러를 요구했지만 120달러로 흥정을 끝냈다. 자칭 ‘베스트 드라이버’라는 택시 기사는 안개 낀 도로를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잔돈이 부족해서 150달러를 주었지만 끝내 30달러를 돌려받지 못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바가지요금은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있다. 국내 언론들은 종종 외국인을 상대로 한 바가지요금 실태를 보도한다. A씨나 기자의 경험과 비교할 때 국내 바가지요금은 그리 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러나 요즘 바가지 상혼은 자못 심각한 모양이다. 김치전 1장과 맥주 2병에 5만원을 받은 포장마차, 2㎞를 운행하고 33만원을 뜯은 콜밴 기사, 두세 배 비싼 성형 수술비를 받는 병원까지 있으니 말이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관광산업의 파이를 키워야 여러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소탐대실(小貪大失)하지 말고 박리다매(薄利多賣)의 영업 전략을 세워야 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