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파일] 희귀질환자의 삼중고
입력 2012-02-20 18:01
한국혈액암협회는 올해 초 사원 한 명을 새로 뽑았다. 그는 필자가 본 직원 중 가장 열정적이다. 일이 많아도 밝은 표정이 떠나지 않는다. 그는 치료제가 있어도 마음 놓고 쓸 수 없는 희귀질환자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및 치료비 부담 경감 등 희귀질환 환자들의 투병 환경이 많이 개선됐다. 하지만 막상 환자들을 만나보면 그들의 고통과 그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책적 이해는 아직도 많이 부족한 듯 느껴질 때가 있다.
우선 희귀질환 환자들은 증상이 명확하지 않거나, 남들에게는 가볍게 나타나는 증상들이 과도하게 발현되는 경우가 많다.
한 예로 국내에 200명 정도 환자가 있는 발작성야간혈색소뇨증(PNH)의 대표적인 증상은 피로감과 복통이다. PNH 환자들은 취미생활은 물론 학교와 직장 생활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 피로를 느끼고, 말기 암 환자들과 같이 마약성 진통제를 써야 할 정도로 복통도 심하다. 희귀질환 환자들의 이런 아픔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불치병에 대한 주변의 두려움도 문제다. 희귀질환 환자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은 그의 병이 ‘불치’ 또는 ‘난치’라는 말을 듣고 동정심과 함께 그 사실을 애써 쉬쉬하며 숨기려 한다. 전염병이나 유전병이 아닌지 걱정되고 자신들의 미래에도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스스로 느끼는 두려움도 문제지만 이런 주변의 압박 때문에 일상생활이 더 힘들어진다고 호소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새로 개발된 치료제를 좀 더 쉽게, 좀 더 빨리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보건당국의 정책적 배려다. 여느 질병과 달리 대부분의 희귀질환은 특별한 치료제가 없다. 따라서 질병의 뿌리를 뽑는 치료가 아니라,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만 초점이 맞춰진 대증치료에 오랫동안 의존하다가 이런 저런 부작용을 겪기 일쑤이다. 희귀질환 환자들이 흔히 특효약 또는 신약 개발 소식에 솔깃해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앞서 예로 든 PNH도 몇 년 전 해외에서 새로운 치료제가 개발됐다는 소식이 있었다. 당시 이 소식을 접한 국내 PNH 환자들은 로또 복권을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면 무엇 하는가. 건강보험재정에 부담이 되기 때문인지 국내 환자들은 이 약을 아직도 구경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많은 신약 중에서도 유독 희귀질환 치료제일수록 국내 시판 승인이 늦어지는 것은 아무래도 희귀질환이 소수의 고통만으로 치부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치권에선 올해 총선, 대선을 앞두고 경쟁적으로 소외계층을 배려하는 내용의 복지 확대 정책을 약속하고 있다. 만약 정말 소외된 사람들을 배려하고 싶다면 누구보다 희귀질환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의 속내부터 헤아려 보길 권한다.
이철환 한국혈액암협회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