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강철구] 대기업의 도덕경제
입력 2012-02-20 18:00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입에 대한 논란은 어느 정도 일단락 된 것 같다. 대기업이 떡볶이, 빵, 커피 등 영세 상공인들이 주로 영위하는 업종에 진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특별조치법을 발의해서도 그렇지만 국민들의 차가운 시선을 못 견디고 자진 철퇴한 것도 그 이유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대기업이 동네시장까지 들어오게 된다면 저렴한 가격, 그리고 더 좋은 품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기업 프렌차이즈를 선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논란의 이슈는 결국 대기업의 시장진출을 자연스러운 신자유주의의 한 형태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국가가 직접적인 개입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이는 마치 농업 이외에 별다른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한 농민들이 다른 직업으로 이동하기 힘든 것처럼,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영세업자들 역시 다른 직업 혹은 다른 사업으로 옮기거나 그대로 대기업과 경쟁하게 된다면 분명 지금보다는 수익이 훨씬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대기업 총수들이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이처럼 돈 버는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둘째 치더라도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 결여된 전형적인 천상(賤商)으로 공격받을 수 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당시까지만 해도 사적 이익을 위해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사람은 천시하는 가치관이 있었다. 반면 국가와 사회의 공적이익을 위하여 활동하는 사람은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그래서 메이지정부는 기업을 일으키는 사람들(實業家) 역시 국가발전에 공헌하는 길임을 강조하고 이들이 긍지와 사명감을 갖고 실업계에 진출하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하였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일본의 시부자와 에이치(澁澤榮一)를 소개하고 싶다. 시부자와는 한 손엔 논어를, 한 손엔 주판을 들라고 했다. 그는 국가발전에 있어서 실업가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건전한 경영이념과 기업가의 사회적 위신을 향상시키는 데 공헌한 기업가였다. 특히 국가발전에 있어서 실업가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강조하면서 도의에 합치되는 사리추구를 통해 공익에 봉사함으로써 관료 못지않게 국가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래서 도덕과 경제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도덕경제합일설’을 주장한 것이다.
“한 개인이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사회 전체가 가난하다면 그 개인의 부는 보장받지 못한다. 사업가는 개인의 이익을 취하기에 앞서 사회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제일은행’ ‘일본적십자’ ‘제국호텔’ ‘오사카방적회사’ ‘도쿄증권거래소’ ‘삿포로맥주’ 등 약 500여개의 다종다양한 기업을 설립하거나 설립에 관여했다. 일본사람들은 그를 ‘일본 기업의 아버지’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존경하고 있다.
강철구(배재대 교수·일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