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고혜련] 입장 바꿔 생각하기
입력 2012-02-19 17:49
“이렇게 무작정 기다리게 해도 되는 건가?” 해가 바뀌기 불과 며칠 전, 정부가 지원하는 한 재단 사업의 공개입찰용 프레젠테이션에 응하기 위해 기다리던 응찰자들은 저마다 시계를 들여다보며 초조한 듯 중얼거렸다. 한 심사위원의 지각으로 행사가 지연되는 것임을 한참을 지나 알게 됐다.
대기실조차 없이 호텔 복도에서 이제나 저제나 목을 빼고 기다리던 응찰자들은 40여분이 지나서야 차례로 발표에 임해야 했다. 그러나 재단 측은 사과는 고사하고 양해 한마디 없었다. 연말인지라 하루 업무를 시간 단위로 쪼개 배치해 놓았던 참석자들은 그 이후 나머지 일정을 미뤄놓느라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무슨 일이든 사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불편을 입히는 상대에게 당연히 이유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일은 인생사의 기본이다. 더구나 피해를 입은 상대가 속내를 드러내기 힘든 ‘을’의 입장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매너 있는 ‘갑’의 여유는 그럴 때 빛을 발한다.
게다가 한국적인 것의 세계화를 위해 정부가 지원하는 이 재단 사업의 공개입찰 ‘자세 매뉴얼’은 보다 국제적인 표준 매너를 담고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진하다. 한 가지 일 처리 자세로 그 단체의 전체적인 모습이 저절로 폄하될까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이 공연히 생긴 게 아니다.
자신이 ‘진정한 갑’이든, 자신이 속한 단체의 힘을 호가호위 식으로 얻어 잠시 ‘갑 행세’를 하든 ‘갑’일 때 잘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갑’일 때 ‘을’에게 보이는 태도가 그 사람의 인격 됨됨이를 재는 척도임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갑’일 때 보이는 겸손함이나 정중함은 그를 정말 아름답게, 빛나게 한다. ‘을’이 보이는 겸손은 때론 당연시되는 것이 세상사이니 더욱 그렇다. 살면서 ‘갑’과 ‘을’의 위치가 언제나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도 안보와 경제를 의존해야 하는 강대국 대통령에게 ‘을’이 될 수밖에 없는 마당에 누가 온전히 ‘갑’ 행세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최근 정부의 동반성장위원회가 부르짖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상생 역시 ‘갑’과 ‘을’이 입장 바꿔 마음의 합일로 ‘윈-윈’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어느덧 ‘을’이 돼서 ‘갑’일 적의 태도가 부끄럽지 않으려면 오늘부터 보다 성숙한 ‘갑’이 될 필요가 있다. 진정한 ‘갑’이 되는 길은 제 자리에 상관없이 바르게 행동하기 일 것이다. 아니, ‘갑’과 ‘을’을 떠나 ‘잘못을 인정하고 양해를 구하는 태도’는 세계화를 지향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생활화해야 할 필수 덕목이 아닌가 싶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다를 바가 있겠는가. 업무상 계약서류를 작성하면서 ‘갑’이 됐다 ‘을’도 됐다 하는 나. ‘갑’이든 ‘을’이든 올해 계약서만 많이 썼으면 좋겠다.
고혜련 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