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백로효과

입력 2012-02-19 17:58

우리나라만큼 명품이 사랑받는 곳도 드물다. 샤넬, 에르메스 등 세계 상류층의 애호품이 백화점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고객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최근에는 명품이 돈 많은 사람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웬만한 중산층 부녀자들도 명품 핸드백 한두 개는 가지고 있다. 신분과시용을 떠나 거의 생활필수품의 하나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명품을 찾는 소비자의 심리를 경제학자들은 백로효과(白鷺效果)를 이용해 설명한다. 즉, 남들이 구입하기 어려운 값비싼 상품을 보면 오히려 사고 싶어 하는 심리에서 명품 선호가 생긴다는 것이다. 제품을 구입할 때 자신은 남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치 우아한 백로와 같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불린다고 한다.

부유층의 명품 선호 현상을 미국의 경제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런의 이름을 붙여 ‘베블런 효과’라고 부르기도 한다. 상류층 사람들이 성공을 과시하고 허영심을 충족하기 위해 사치를 일삼는 것을 꼬집은 것이다. 베블런은 노르웨이 이민의 아들로 명문 예일대 출신의 철학박사였지만 평생 가난하게 살다 생을 마쳤다.

우리나라에 진출한 명품회사들도 소비가 주춤하자 최근에는 대규모 바겐세일을 실시해 백화점이 아침부터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다. 갖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구입하지 못했던 명품을 절반 값에 판다고 하자 너나없이 달려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명품을 좋아하는 현상은 부유층이라고 더 심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사람이면 누구나 값비싼 명품을 갖고 싶어 하는 속물근성이 있지 않나 싶다.

초점은 명품선호 여부가 아니라 자기 분수에 맞게 생활수준을 유지하느냐에 달려있는 것 아닐까. 뉴스위크 최신판에 소개된 독일인의 검약정신을 관심 있게 읽은 적이 있다. 사상 처음으로 수출 1조 유로(약 1478조원)를 돌파한 독일이지만 1948년 미군이 구호식량으로 배급한 돼지기름 통조림을 최근에야 먹었다는 87세 연금생활자 얘기다.

이 노인은 요리할 때나 쓰는 하찮은 돼지기름 통조림을 버리기가 아까워 ‘비상시’에 대비해 64년 동안이나 보관해뒀다고 한다. 독일 경제의 저력을 보는 듯해 섬뜩했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부유럽 국가들이 빚에 허덕이며 독일의 눈치만 살피는 근원적 이유를 알 만했다. 그동안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 선진국 문턱에 진입한 우리가 명품 한둘 갖는다 해서 안 될 것은 없다. 다만 검약정신은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