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송원근] 한·미 FTA 폐기 주장의 허구

입력 2012-02-19 17:59


다시 선거의 계절이 다가왔다. 경기둔화의 여파인지 실정이나 선동 탓인지 정부 여당은 민심을 잃어가고 야권과 진보세력은 집권의 희망을 보면서 기세를 올리고 있다. 온 나라가 좌클릭을 하는 와중에 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주장하고 나섰다. 야당 의원들이 미 대사관으로 몰려가 자신들이 집권하면 한·미 FTA를 폐기하겠다는, 96명 의원 명의의 서한을 전달한 것이다.

이른바 진보 개혁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미 대사관으로 몰려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그리 낯선 장면은 아니다. 예전에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에도 이들은 미 대사관에 항의 서한을 전달하고 증거가 있느냐며 따졌다. 하지만 북한 핵개발이 사실로 드러난 이후에 이들이 북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한·미 FTA 폐기 주장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북핵이 우리 삶을 위협함에도 비판하지 않는 것은 이념적 성향과 정치적 목적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미 FTA 폐기 주장도 반미 이념과 선거라는 정략적 목적 때문에 국익을 내팽개치는 행동이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거대 선진경제권인 유럽연합(EU)과의 FTA는 개방수준이나 경제적 파급효과 그리고 협정의 내용 모두 한·미 FTA와 유사함에도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중국과의 FTA도 중소제조업, 농업 등 국내 산업에 대한 파급효과가 한·미 FTA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클 것으로 예상됨에도 한·중 FTA 추진에 대해 야권에서는 어떤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다. 한·미 FTA가 미국과의 FTA이기 때문에 폐기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미 FTA 폐기를 주장하는 야권 인사들의 참여정부 시절 발언도 논란이 되고 있다. “미래를 위한 적극적 도전의 기회”, “통상국가로 성공하려면 세계자본주의의 본토로 진출해보자”는 등 당시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히 당리당략에 의한 말 바꾸기로 비난 받아 마땅하다. 정치인들이 말을 바꿀 때에는 항상 상황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의 변화가 있었을까?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되었던 2007년과 달리 양국 의회 비준을 마친 현재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경제의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파산을 맞이했고 따라서 한·미 FTA는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 근거해 한·미 FTA에 대한 입장 변화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경제에 큰 충격을 주었고 그 여파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자유시장경제의 파산을 의미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기 어렵고 그런 견해가 한·미 FTA 폐기 주장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더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대공황의 예에서 보듯 보호무역은 세계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 따라서 세계경제 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무역자유화를 신장시켜 교역과 생산의 증대를 통해 이를 극복해나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여전히 세계 최대의 시장인 미국과의 FTA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경제 침체라는 상황을 극복하는 데 오히려 그 필요성이 더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국익 측면에서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를 폐기하는 것은 수년간의 협상 끝에 타결되어 양국 의회의 비준까지 받은 국제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이다. 이 경우 대한민국의 국제적 신뢰도 추락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송원근(한국경제연구원 기획조정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