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재의 ‘영성의 발자취’] (7) 갈릴리의 예수님

입력 2012-02-19 17:42


게네사렛·가버나움… ‘나를 따르라’던 그 말씀 들리는듯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소원은 예수님과의 만남일 것이다. 1세기의 예수님을 직접 만날 수는 없을까? 아마 타임머신을 타기 전에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그분을 가깝게 만나는 방법이 있다면 갈릴리로 가는 것이다.

갈릴리를 갈 때마다 아쉬운 것이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직접 걸어보는 것이었다. 작년 여름, 드디어 그 길을 직접 걸어볼 수 있었다. 본부는 엔게브로 정했다. 엔게브는 갈릴리 동쪽에 위치한 항구, 전통적인 거라사와 데가볼리 중 한 도시인 수시타(히포스)의 중간에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티베리아로 가는 배를 탔다. 아직도 바다에는 물안개가 덮여 있고 날씨는 서늘했다. 필자가 탄 배는 소위 ‘예수의 배’다. 1986년 1월 중순, 믹달 해변에서 두 어부가 한 배를 발견했다. 길이 8.2m, 너비 2.3m, 높이 1.25m의 이 배는 학자들에 의해 1세기 때의 것으로 밝혀졌다. 모두 15명 가량 탈 수 있는 이 배는 지금 키부츠 기노사에 보관되어 있다.

그 배와 똑같은 모양의 배를 타고 갈릴리를 건너는 동안 갈릴리에서 있었던 예수님의 일들이 생각났다. 피곤해서 배 고물에서 주무신 예수님(막 4:38), 그가 앉았을 고물에 앉아 보았다. 시원하고 전망이 좋았다. 저만치 풍랑 치는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이 보이는 듯했다.

드디어 티베리아에 도착했다. 뜻밖에도 어부들이 고기를 잡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았더니 작은 물고기였다. 아마 ‘비니’라고 불리는 갈릴리 연어(정어리)일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 시대 믹달에 생선 가공공장이 있어서 고기를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했다고 한다. 벳새다 들녘에서 소년이 가져왔던 물고기와 같은 것인지 모른다.

티베리아에 내렸다. 티베리아는 갈릴리 최대의 도시, 이 도시는 헤롯 안티파스가 로마의 황제 티베리우스를 위하여 세웠다. 티베리아 도심을 가로지르면서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왜 성경은 티베리아에 대해 침묵하는가? 분명히 역사적으로 티베리아는 예수님 시대에 이미 존재했는데 왜 예수님은 이 도시에 대해 말씀하지 않는가?

티베리아뿐 아니다. 세포리스(찌포리)도 그렇다. 세포리스는 예수님 시대 갈릴리의 수도였고, 나사렛에서 6㎞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나사렛에서 30년을 사신 예수님이 모르실 리 없다. 그런데 성경은 티베리아와 세포리스에 대하여 한번도 말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그곳에 갔을 때 그곳 사람들이 벳새다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는가?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예수님은 사람이 만든 도시보다 자연 그대로를 더 사랑하셨다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주로 활동하신 무대는 해발 600m 미만의 갈릴리 언덕이었다. 거기에는 포도원이 있고 새가 날고 들의 백합화가 핀다. 티베리아를 벗어나 예수님이 활동하신 갈릴리 서북쪽을 향하였다.

고개를 돌리자 왼쪽엔 타우벤 계곡, 오른쪽엔 믹달이 나타났다. 타우벤 계곡에서는 옛날 로마와 싸웠던 갈릴리 투사들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믹달은 ‘탑’이란 뜻의 항구,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 당시 이곳은 인구 4만명 가량 살던 유대인 반란군의 본거지였다. 이 도시에서 성경의 막달라 마리아가 살았는가?

야영지가 된 해변은 말없이 출렁거렸다. 계속해서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게네사렛, 말만 들어도 설레는 곳, 예수님이 가장 많이 활동하셨던 곳이다. 벌써 땅 색깔이 다르다. 거무스레하니 누가 보아도 옥토다. 1세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갈릴리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갈릴리 호수는 천연적인 풍부함과 아름다움이 있다. 호수의 물은 맑고 순하며 모두 22종류의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호수 주변에는 각종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호도, 종려, 감람나무, 포도, 무화과 등 연중 열 달 동안 열매를 맺고 있다. 갈릴리의 땅은 비옥하여 노는 땅이 없으며 천하의 게으름뱅이라도 이곳에 오면 경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이다.” 키부츠 기노사는 게네사렛의 현재 이름이다. 천천히 게네사렛 호숫가를 거닐었다. 부둣가에 길게 늘어선 검은 방파제가 눈에 들어왔다. 갈릴리 특유의 검은 돌(바살트)은 이곳이 아주 오래된 항구임을 보여준다.

평생 엔게브에서 고기를 잡고 살았던 고고학자 멘델 눈(Mendel Nun)은 예수님 시대의 갈릴리 항구가 13개라는 것을 밝혀냈다. 우리가 아는 뱃새다, 가버나움, 거라사, 게네사렛, 믹달 외에 8군데가 더 있었다. 게네사렛은 베드로가 그물 씻던 곳이요, 예수님이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눅 5:5)고 말씀하신 곳이다. 또한 예수님이 바닷가에 앉아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했던 곳(마 13:1)이다. 그 역사적인 장소에서 자유분방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옷을 벗고 수영하고 있었다. 예수님이 보신다면 무엇이라 말씀할까? 조용히 웃음이 나왔다.

게네사렛을 뒤로 하고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갈릴리는 빨리 걷지 않아도 좋다. 2000년 전으로 돌아가 생각하면서 천천히 걸으면 된다. 여기저기가 다 예수님의 발자취다. 공중에 새가 떼지어 날아간다. 분명 철새일 것이다. 이스라엘은 남과 북, 동과 서의 철새들의 서식지요 통과지다. 그래서 약 350종류의 새가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예수님에게 그 많은 새는 한 마리 한 마리가 다 설교의 주제다. 하나님은 심지도 거두시지도 않지만 그들을 먹이신다(마 6:26). 도로 주변에는 포도밭과 감람나무가 풍성하다. 예수님에게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소중한 실물교재였다.

한참을 걸어 가버나움에 도착했다. 이름하여 ‘예수님의 본고장’, 예수님에 관한 대부분의 사건이 이곳에서 일어났다. 이른 아침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시고(막 1:35), 회당에서 귀신 들린 사람, 중풍병자,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셨다(막 2:21∼31). 그리고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곳도 이곳이다(요 4:46∼54).

중풍병자를 고친 곳으로 갔다. 현재 발굴된 가버나움의 주거지는 약 500㎡, 성서학자 머피 오코너(Murphy O’conner)가 1인당 주거 공간을 5㎡ 정도로 잡았을 때 대략 15가족이 대가족 형태로 살았을 것으로 본 곳이다. 집들은 빈약한 재료와 함께 원시적 모양으로 지어졌다. 충분치 않은 기초 위에 다듬지 않은 현무암 덩어리를 쌓아 올려 모래와 흙으로 메워 발랐다. 그리고 지붕은 대충 회반죽으로 덮은 뒤 나뭇가지들을 얹었을 것이다. 그런 지붕에 가끔 비라도 오면 흙 속에 잡초가 자라 시편 129편 6절 같이 “그들은 지붕의 풀과 같을지어다” 하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마가복음 1장의 중풍병자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좁은 골목을 지나 들것에 실린 채 계단을 따라 지붕으로 올라간 후 이 지붕을 헐고 예수님께 내려왔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때 어디 살았을까? 가버나움은 20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갈릴리의 예수님과 다시 만나는 곳이다. 시원한 그늘에 앉아 피곤한 발을 뻗었다. 멀리 바다가 보이고 예수님의 말씀이 들리는 듯했다. “나를 따르라”(마 4:19) “내 양을 먹이라”(요 21:15) 우리를 제자로 부르신 분이 우리를 다시 세상으로 보내신 곳, 우리는 매일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갈릴리로 가고 예수님과 함께 세상으로 가기 위해 갈릴리를 떠난다.

<한신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