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소녀들의 ‘바드’ 굴레… 어른들 죗값 치르기 위해 납치·강제노역 성행

입력 2012-02-17 18:58

2년 전 아프가니스탄 쿠나르주의 한 마을. 소총을 든 남자들이 자고 있던 소녀 샤킬라(8)를 질질 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샤킬라는 그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자신의 삼촌이 뭔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삼촌의 잘못에 대한 보복으로 끌려간 샤킬라는 더럽고 어두운 방에 갇혀 두들겨 맞았다. 창문 하나 없는 방에 갇혀 이틀에 한 번 빵 한 덩어리와 물을 마시며 1년 넘게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

외부인의 눈엔 분명 ‘납치·아동학대’인 이 사건이 아프간에서는 ‘바드(baad)’라고 알려진 전통이며 지금도 빈번하게 자행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바드가 아프간법상 불법이긴 하지만, 이슬람 전통에서는 어른들이 저지른 죄의 값으로 어린 소녀를 데려가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종교학자들은 말했다. 유엔이 ‘해로운 전통’이라고 비난했지만 바드는 아프간, 파키스탄, 인도 등에서도 성행하고 있다.

어린 소녀들은 부모나 가족 구성원이 저지른 잘못이나 빚을 탕감하기 위해 노예로 끌려가거나 결혼과 출산을 강요받는다. 이들은 주로 살인이나 불륜 등의 범죄에 대한 ‘보상’으로 끌려간다.

이렇게 바드가 활개를 치는 것은 아프간 정부의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미 썩을 대로 썩은 사법부는 어떤 사건이건 돈을 요구한다.

이 같은 전통은 아프간 산악과 사막지역에 유목민이 떠돌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유목민에게는 경찰도 법정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인 어린이, 그중에서도 출산이 가능한 소녀를 물건처럼 빼앗아왔다고 아프간계 미국인 사회학자인 나스린 그로스가 말했다.

샤킬라의 경우 삼촌이 다른 집안의 여자를 꾀어 도망치는 바람에 잡혀 갔지만, 기적적으로 도망쳐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도 전통에 맞서 저항했다. 샤킬라의 아버지는 딸이 이미 정혼자가 있다고 분노하며 경찰과 법원을 찾아가 처벌을 호소했다. 그러나 아프간 현실에서 딸을 끌고 간 이들을 처벌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신문은 전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